2011년 6월 7일 '이 아침에'


나무에게 배우는 인생

                                                조옥동/시인

며칠 전 한국에서 온 손님과 함께 Getty 박물관을 찾았다. 마침 교환 전시실에는 "Tree is Life."란 주제로 사진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세상의 멋있는 나무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은 거의 없고 굽어지고 비틀리고 표피가 벗겨지고 뿌리까지 뽑히면서 풍상을 겪어낸 나무들의 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박물관 입구 영사실에서 상영된 10분간의 안내 영화 자막에서 발견한 짧은 문장이 전시실을 도는 동안 도움이 됐다. 관람자들로 하여금 단순한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기(look) 보다 마음의 눈으로 관찰(See)하라는 주문은 그저 사진속의 나무를 보는 대신 내가 나무가 되어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무는 생명이고 생명은 과정이요 호흡의 연장으로 거기에 일생이 그려져 있었다. 나무의 일생과 사람의 일생이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사진전시회의 주제가 던지는 의미는 ‘나무를 통하여 인생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사람의 일생과 나무의 삶을 연결하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작가가 표현하려는 조화를 발견하고 싶었다.

지난 메모리얼 데이 연휴에 세코야·킹스캐년 국립공원을 돌아 본 여행을 한 후라 나무를 주제로 한 사진작품들은 더욱 나의 관심을 끌었다. 살아있는 나무 중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인 3백 피트를 넘는 제너럴 셔만 트리, 일명 내이션스 크리스마스트리를 비롯해 둘째 셋째 등 큰 삼나무가 1마일 안에서 수천 년 자라고 있는 북가주의 시에라네바다의 서쪽 깊은 골짜기는 때 아닌 겨울풍경이 펼쳐 있었다. 무슨 심사로 오뉴월 여름날 대책 없이 설경을 차려놓고 온통 흰 눈을 쓴 산과 나무들이 관광객에게 5월의 크리스마스를 선물했다. 바람은 나무 밑에 엎드려 숨죽이고 잿빛하늘 아래 싸락눈만이 하루 종일 연출을 맡았다. 포근하고 정겹고 고요함이 오히려 슬픔을 연기하고 있는 레드우드 숲에서 심호흡조차 안 하면 ‘아름다움’을 보고도 그 미를 인정치 않음이었으리라.
세월을 견딘 나무들의 여러 모습을 살피며 순간순간 자연과의 일체감을 부인할 수 없었다. 자연은 우리의 진실한 스승이다. 한편 갑작스런 날씨변화에 추위와 불편을 느끼는 허약함은 허둥거리는 인간의 모습을 재발견케 했다.

예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지각되는 대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부추기며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상상력을 동원시킨다. 현실을 뛰어 넘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를 감동시킨다. 실제로 우리는 박물관이나 전시실을 찾지 않아도 주위에서 훌륭한 예술품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자연보다 더 훌륭한 예술품을 풍성하게 전시한 곳은 없으리라.

자연이 숭고한 대상으로만 여겨진다면 거리가 멀리 느껴지나 예술가들에겐 보통사람이 갖고 있는 본능 외에 높은 3차원-4차원의 지각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기술이 있다. 예술작품이란 작가들이 자연의 단순한 모방을 초월하여 근원적인 의미를 캐내어 서로 다른 방법으로 그 의미를 승화시킨 것이다.

끝으로 고흐, 모네, 르느아르, 세잔느, 고갱과 밀레 등 19세기 인상파의 작품들을 만난 감동을 안고 전시장을 나올 때 세코야 킹스캐년에서 장엄한 5월의 크리스마스를 선물로 받고 파도쳤던 감정은 ‘지구는 자연이라는 가정이고 우리 일상은 자연이 은유로 표현하는 축약형이라.’는 한 시인의 말이 생각나 다시금 길게 파장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