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온 행복 보따리

2014.10.22 03:51

노기제 조회 수:22



20141016                따라온 행복 보따리

                                                     노기제

   신명나게 몸을 흔들고 싶어지는 음악을 듣는다. 새파란 청춘일 땐, 그런 분위기를 만나지도 못했던 세대들. 모인 어르신들 연세가 대충 팔십을 넘긴 모습들이다. 양로병원이라기에 노인 환자들만 기거하는 병원이라 생각하고 봉사자를 자원했던 10월의 어느 초가을 날. 내가 속해 있는 7080 기타 동호회에서 정규적으로 계획 된 봉사 활동이다. 그러나 내겐 처음이다.

   고교 졸업 후, 작은 오빠 친구네 집에서 빌려 온 기타를 메고 학원을 찾아 갔던 날부터 도무지 이뤄낼 수 없었던 기타치기다. 분명 초보자 클래스에 등록을 했건만, 모인 사람들 모두는 강사가 시키는 대로 잘도 따라 친다. 그런데 나만은 못하겠다. 손가락을 이 곳 저 곳 옮겨가며 코드를 잡아야 하고, 그 코드가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자리를 외워서 손가락을 빠르게 옮기는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 시작했다가 곧 접었던 기타치기를 결국 10여년이 지난 후, 미국땅에 옮겨와서 다시 시작했다. 낯선 땅, 낯선 언어, 먹고 살기가 우선이던 이민 초기 때, Los Angeles City College에 등록을 했다. 직장 끝나고 남편 저녁 챙겨 주고 숨차게 다니면서도 왜 그리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고, 손가락에 익지도 않는지. 결국 또 접을  수밖에 없었던 기타치기.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배우려 애를 썼지만, 결국은 시작한지 50년을 바라보면서 만난 곳이 가르치는 곳이 아닌, 동호회다. 누구든지 와서 기타 치며 노래하며 즐기자는 곳이다. 용기 내어 찾아 가는데도 긴 시간 머뭇거림이 필요했다. 내 스스로가 잡을 수 있는 코드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너무도 하고 싶다는 간절함은 있었다. 거기에 이젠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했다.

   리드하는 분을 따라 노래를 한다. 코드는 잡으려 애를 쓴다. 재미있다. 되거나 말거나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인다. 사실은 아는 노래도 없다. 7080 그 시절에 기타 치며 노래하던 생활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렴 어떠랴. 그냥 노래에, 기타 소리에 묻어 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등록하고 다니던 학원이나 학교처럼 성적 때문에 전전긍긍 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노래방기계가 설치되어 원하는 대로 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갈고 닦은 재주로 양로원 위문 공연을 다니는데 내가 첨으로 참여 한 것이다. 살아온 인생길에 병을 얻어 자유롭지 못한 분들. 더러는 어디가 심하게 고장이 나서 편하지 않은 모습들도 보인다. 그래도 그분들 마음은 우리랑 다를 바 없다.    옛 청춘 때 흥얼대던 노래 가락들, 불편한 몸 잠시 잊고, 음악을 따라 자연스레 흔들어 본다. 가사를 못 알아들으면 어떠랴. 휠체어에 의지한 몸이지만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한국 어르신들 틈에 섞여 함께 우리 가락에 신이 나는 외국 노인들도 있다. 살아온 문화가 다른 탓에, 우리 중 맘에 드는 남자 회원에게 다가 와, 함께 사진도 찍자, 포옹도 하자, 그저 바라만 보아도 너무 맘에 들어,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는 외국 할머니. 불편한 몸에 나이 들어 늙은 모습이 전혀 상관없는 젊고 파릇한 마음이 귀하게 보인다.

   기타치기, 노래하기,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나설 수 없어, 시낭송을 해 드렸다. 나름대로 내가 잘하는 걸 했으니 내 맘도 뿌듯하다. 내가 아니더라도 기타치기 노래하기 고수들이 있으니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분들을 잠시나마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다. 단박에 소년 소녀 시절로 돌아가 스르르 눈을 감고,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감상하시는 모습들을 보며, 난 그분들 보다 몇 백배 더 행복하던 걸 기억하련다.

   접고 접어 꼬깃한 백 불짜리, 허리춤에서 꺼내 건네주시던 모습에 우리들 가슴이 벅차오른다. 미국이란 나라가 이런 나라구나. 늙고 병들어 외로운 분들에게 놀이터 제공하고, 간식 제공하고, 푸짐한 점심까지. 부양가족 없어도 돈 걱정 않고 넉넉한 팁도 챙겨 줄 수 있다. 남은 생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온몸이 짜릿하니 밀려오는 행복에, 부양가족 없이 나이 드는 나의 모습이 편안하다.

   기타치러 노래하러 7080 기타 동호회로 향하는 발길이 이렇게 귀한 행복들을 끌어다 줄줄, 예전엔 미처 몰랐지만, 이젠 더 값진 행복을 받기에 합당한 나를 훈련하고 싶다. 생각만 해도 벌써 내 몸은 흔들흔들 신이 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