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
2014.10.22 06:19
귀성
이월란 (2014-10)
팔월의 보름이 바다를 건너오면
기억의 티켓을 끊고 성묘를 간다
물기를 닦아낸 가윗달을 비추면
앨범 사이로 걸어 나오는 주름진 미소
빈방을 지켜온 세월을 넘기길 때마다
명절 대목처럼 찬란했던
그들의 증빙서류가 너무 얇다
입체감이 없는 영혼을 만지며
오늘이 추석이래
나란히 죽은 빗돌 위에 앉으면
추풍령 고개 너머 눈물 닦은 바람이
넙죽이 절을 한다
교복 입고 열어보던 도시락처럼
혀에 익은 밑반찬이 차려지고
교과서 귀퉁이를 발갛게 적시던
김칫국물처럼 시큼해지는 언덕
꽃무늬 원피스로 물든
엄마의 마지막 단풍여행지에
뚝, 바닷물 한 점 떨어진다
늦가을처럼 살다간 땅 위에
비탈진 선산도 봄꽃을 피울까
바다에 빠진 귀성열차에 다시 기적이 울리면
혼혈의 손자가 태어나는 이승의 무성함을
다 안다는 듯
다시 인화되고 있는 저승의 얼굴
제물처럼 펼쳐진 사진 위에
둥근 달빛이 오래 앉아 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0459 | 동백 아가씨 | 이월란 | 2014.10.22 | 55 |
10458 |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2 | 이월란 | 2014.10.22 | 39 |
10457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이월란 | 2014.10.22 | 45 |
» | 귀성 | 이월란 | 2014.10.22 | 36 |
10455 | 눈 오는 날 | 이월란 | 2014.10.22 | 40 |
10454 | 땅을 헤엄치다 | 이월란 | 2014.10.22 | 31 |
10453 | 빈집 | 이월란 | 2014.10.22 | 36 |
10452 | 따라온 행복 보따리 | 노기제 | 2014.10.22 | 35 |
10451 | 품위있는 욕 | 김학천 | 2014.10.17 | 82 |
10450 | 군밤에서 싹이 났다고 | 강민경 | 2014.10.17 | 35 |
10449 | 시와 마라톤으로 편견 이겨낸 재미 시인 박영숙영 인터뷰기사 | 박영숙영 | 2014.10.17 | 43 |
10448 | 그 바람 소리 | 차신재 | 2014.10.16 | 35 |
10447 | 비 오는 날의 편지 | 차신재 | 2014.10.16 | 40 |
10446 | 사람들은 무서워한다 | 차신재 | 2014.10.16 | 53 |
10445 | 삶과 죽음 | 백남규 | 2014.10.15 | 142 |
10444 | 악취(惡臭) | 정용진 | 2014.10.15 | 68 |
10443 | 어느날 오후 | 차신재 | 2014.10.16 | 289 |
10442 | [이 아침에] "엄마, 두부고명 어떻게 만들어요?" 10/22/14 | 오연희 | 2014.10.24 | 172 |
10441 | 하나님 전상서 | 차신재 | 2014.10.13 | 148 |
10440 | 그대가 꽃이지 않으면 | 차신재 | 2015.01.14 | 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