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실수를 어떻게 할까?
2010.08.03 13:05
내가 속해 있는 Angeles Chorale 이라는 합창단이 있다. UCLA 음악대학에 속해 있는 이 합창단은 지휘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UCLA 음악대학원의 지휘과 교수이기도 한 그의 지휘이론 책은 세계 십 개국 이상으로 번역되었다.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한국의 음악대학들의 교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합창단의 명성도 그 지휘자에 맞게 세계적이다. 미주전체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럼이 없는 훌륭한 합창단이다. 2-3년에 한 번씩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도 연주를 한다. 가끔씩 헐리웃 볼에서도 연주를 하기도 한다. 언제나 수준 높은 연주를 하며 관객들에게 합창의 진수를 전한다. 합창단은 역시 지휘자가 만든다. 그 지휘자의 역량에 따라 합창단의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유명한 지휘자는 거의가 다 그런가. 까다롭고 깐깐하기를 말로 다 못한다. 조그마한 실수도 허용을 하지 않는다. 합창단원들의 작은 실수에도 소리를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연습 중에는 숨소리 하나 내는 것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연습시간이 아닌 때에 만나면 퍽이나 다정하고 자상한 모습이다.
일 년에 세 번의 정기 연주회를 갖는데 학기 마지막인 6월초에 가지는 연주회는 UCLA 대학 합창단과 그 학교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를 한다. 일 년 세 번 중 가장 크게 하는 연주회인 셈이다. 거의 3백 명이 훨씬 넘는 연주자들의 힘찬 연주는 가히 환상적이다. UCLA Royce 홀에서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꽉 찬 청중들은 음악만큼 수준 높은 감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합창단원의 90%정도가 백인이다 보니 청중 역시 거의가 다 백인들이다. 연주가 끝나고 나면 기립박수를 받으며 청중이나 연주자가 모두 함께 기뻐하며 황홀함을 맞보는 시간이 된다.
지난 6월초에 정기 연주회가 있었다.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연주했다. 역시 많은 청중들과 함께 연주를 하고 있는 중에 ‘Angeles Chorale’로써는 상상 할 수 없는 실수가 있었다. 소프라노 솔로가 나오고 그 솔로 연주 중간에 합창이 나오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을 지휘자가 놓쳐버린 것이다. 지휘자가 합창단에게 사인을 주지 않았다. 200명이 넘는 합창단의 모든 단원들이 하나같이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모두가 당황했지만 역시 수준 높은 합창단답게 한 소절을 지난 뒤 지휘자의 사인에 따라 그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냥 한 소절이 빠져버린 것이다.
아마 청중들은 누구도 몰랐을 게다. 그 곡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하드라도 우리의 실수를 전혀 눈치체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완벽한 실수였으니까. 실수를 했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모른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보다 200명이나 되는 합창단원들이 지휘자의 사인이 없다고 그렇게 모두 조용하게 한 소절을 완전히 빠지도록 지휘자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몇 사람이라도 소리를 냈을 법도 한데. 악보에 나와 있으니, 지휘자는 실수 했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불러서 악보대로 하자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휘자의 위대함에다 단원들의 대단함도 함께 했다. 지휘자를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지휘자가 실수 하면 우리도 실수한다 하는.
사회 어떠한 기관에서도 그렇게 지휘자와 단원들의 호흡이 척척 맞아 들어간다면 얼마나 일이 쉽게 잘 될까. 지도자가 실수를 해도 온 단원들이 그 실수를 함께 감당한다면 실수는 완벽하여 실수로 나타나지 않을 게다. 그렇게만 마음이 잘 통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지도자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지도자를 돕는 단원들의 마음자세도 더 중요하다. 온 대원들이 한 마음이 되어 지도자를 따르고 함께 힘을 합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겠지.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도자를 잘 돕는 훌륭한 참모와 부하가 되는 것,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훌륭한 지도자는 부하가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의협심으로 지도자가 실수하면 아랫사람들이 나서서 바르게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은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게다. 차라리 지도자와 함께 그냥 실수하고 조용히 지도자가 싸인 할 다음 박자를 기다리는 것이 더 아름답게 마무리될 것이다. 좋은 부하 없이 훌륭한 지도자가 나올 수 없다.
만약 우리 합창단에서 그 연주회 시간에 지휘자가 실수해서 사인을 하지 않았는데 몇 명은 가만히 있고 몇 명은 소리를 냈었다면 얼마나 큰 실수로 기록되었을까. 그렇게 위대한 지휘자도 실수를 했다. 그러나 모든 대원들은 지휘자를 믿었다. 악보에 아무리 그렇게 기록되어 있어도 지휘자가 사인을 하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 다는, 악보보다 지휘자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모든 단원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지휘자를 믿고 그 사인대로 따른 합창단은 그 큰 실수에도 청중들이 아무도 눈치체지 못하게 완벽하게 잘 넘어갔다. 마음을 합하면 아무리 큰 실수도 완벽하게 덮어진다.
서로가 사랑으로, 지도자를 인정하고 믿어주는 마음으로 함께 힘을 합쳐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로 가득차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다.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도 인간이니 언제나 실수할 수 있다 것을 인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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