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담은 긴 때도 있었고 짧은 때도 있었다         “글마루” 1999년

   우리 아버지에게는 첩이 있었다. 그 여자는 눈도 크고 말도 잘해서 무대배우 같은 여자라 했다. 여자가 안경을 쓰면 건방지다고 할 때에 안경도 썼고, 또 옥살이도 삼년이나 살았다고 했다. 그것은 그녀가 한 때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때문이라 한다. 우리는 그 여자를 “메가네(眼鏡)쟁이”라고 물렀다.

   속이 타서 가슴이 재로 소복한 어머니는 여섯 번째로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어머니는 산고를 추수지 못해 젖이 아주 부족해 갔다. 이런 경황일 때 어느 날, 아버지는 의논할 것이 있다며 어머니를 불러 은밀하게 말을 나누고 있었다. 집안에 이상한 공기가 감돌았다. 그 때 나는 열 한 살이었고, 식구들이 웅성거리는 짬엔 끼지 못하고, 나대로 뭣인가 알아내려고 토끼 귀가 된 긴 귀를 문살에 대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설득하듯 무슨 말인가 조용히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꺼져가는 소리로 “예 예” 하는 목소리만 들렸다.
   한참 만에 아버지는 방문을 열고 나와 우리들께 이렇게 말했다. “상덕이를 너희 작은어머니 집에 보내니 그렇게들 알아라”. 쌍둥이 중에 훨씬 더 귀엽고 또릿또릿한 녀석이 상덕이다. 우리는 그 때 까지 그 여자를 작은어머니라 생각해 본 적도, 더 더욱이 불러 본 적은 꿈에서도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사코 우리들 앞에서 “너희 작은어머니”라 했다.
   메가네쟁이는 아버지와 산지 십 여 년이 되었어도 아이가 없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가 퍽 갖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 배로 낳은 아이는 아닐망정 그 사람의 아이를 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가뻤을까.

   양력으로 정월 초 이튼 날 아침이었다. 어머니는 지친 어깨로 기침을 해 가며 상덕이 옷가지를 챙기고 있었다. 옆에서 가사를 돌보던 아재(친척 아주머니)가 한 마디 부채질한다. “첩의 아이를 대려다 키운다는 말은 들어도 본 부인 아이를 첩에게 보낸다는 말은 듣기도 보기도 처음이요.” 하며 혀를 찼다. 어머니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마신다.
   솜 포대기에 폭 싸인 아이는 메가네쟁이의 품에 안겨 아버지와 같이 대문을 나섰다. 어머니는 나보고 따라나서라 하신다. 나는 동생의 등막이 되어 그들을 뒤따랐다. 나도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도립병원의 긴 벽돌담을 끼고 갔다. 그 담은 왜 그리도 긴지 가도 가도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일월의 쨍한 추위는 파란 하늘만치나 서슬이 퍼랬다. 코가 떨어지게 시렸다. 어머니가 둘러 준 목도리를 한 번 더 둘러 코를 쌌다. 담벽 거의 다 가서 두 사람은 오른 쪽으로 꺾었다. 아담한 주택가가 나타났다. 나는 메가네쟁이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서 산다는 것에 놀랐다. 아버지 뒤로 바싹 따라붙었다. 벌써 들어갈 새집이 낯설었다.
   살을 어이는 공기를 헤치고 새들이 째째거리며 서리 맞은 하얀 가지들 사이에서 푸덕거렸다. 까치는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다. 동생을 남에게 주는 이 슬픈 날에 까치가 싸댈리는 없지.묵묵히 또 그들의 뒤를 따랐다.
  
   아침 햇살이 눈부신 방이었다. 거기에 앞가슴이 불룩한 유모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메가네쟁이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이다. 얼굴이 비치는 뜨끈뜨끈한 장판의 아늑함으로 여기에도 또 하나의 아버지 방이 있어 동생을 맡겨도 될 것 같은 안도감이 생겼다. 아버지는 나를 거기서 자고 가라 말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자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동생을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상덕이는 어머니 것 보담도 두 배나 더 큰 젖꼭지가 낯설어 조그마한 얼굴을 자꾸 유모의 젖가슴에 비비댔다. 아이는 한참 칭얼거리다 드디어 울기 시작했다. 메가네쟁이와 유모의 얼굴에선 땀방울이 숭굴숭굴 돋았다.
   밤이 되었다. 잠들었던 아이가 다시 깨어서 칭얼거리더니 또 울었다. 나도 울고 싶었다. 그러자 메가네쟁이는 아이를 가슴에 품고 자장가를 불렀다. 어머니 헌데서는 자장가란 들은 적이 없다. 그것은 퍽 슬픈 곡조였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울었다. 참았던 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흐느낌으로 이불이 들썩거렸다. 그 날 저녁 온 밤, 그 여자는 아이와 나를 달랬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어째서인지 그 여자 집에는 나만 다녔다. 오빠와 동생들은 가지 않았다. 어느 하루의 일이었다. 그 집 대문에 들어서니 왁자지껄했다. 다투는 소리였다. 놀라서 뛰어가 보니 유모를 가운데 두고 메가네쟁이와 다른 몇 여자들이 싸우고 있었다. 나는 바삐 유모에게서 동생을 받아 안고 디딤돌 밑에서 지켜보았다.
   저쪽 여자들은 자기 집 유모를 뺏아 갔다며 데려간다고 유모의 팔을 끌어 당겼다. 메가네쟁이는 못 데려간다고 뒤에서 유모를 부등켜안고 있었다.  그 때 한 여자가 메가네쟁이의 얼굴을 쥐어뜯었다. 그러자 메가네쟁이는 유모에게서 팔을 풀었다. 그리고 날렵하게 상대방 여자를 방 구석에 몰아넣고 발길질, 주먹질을 해댔다. 유모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결사적인 대항이었다. 드디어 그들은 완력으로 덤비는 것을 포기하고 가진 욕설을 퍼부으며 물러갔다.
   나는 유모를 빼앗기지 않은 것이 너무 기뻐서 처음으로 메가네쟁이가 좋아졌다. 온 힘을 다해 동생을 위해 싸워 준 것이 고마웠다. 그 후 그녀의 자장가는 나를 슬프게 하지 않았다.

   팔 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한 쪽의 쌍둥이는 날 때부터 울던 울음을 그치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머니는 또 치덕치덕 울고 계셨다. 퍽 지친 울음이었다.
   조그만 시신이 나가는 날이었다. 상여차가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흰 보자기로 싸인 조그만 상자를 짐짝 싣듯 후울 던져 차에 실었다. 몇 시간 전까지도 살아있던 생명을 저렇게 천대하다니, 나는 할아버지가 미웠다. 오랫동안 그를 싫어했다. 그러나 그것이 시아버지의 며느리에 대한 배려로 단념하라는 표현이었다는 것을 어찌 그 나이에 알았겠는가. 옛날 중국에서는 영아가 죽으면 부모 먼저 죽은 불효새끼라고 퇴비장에 버렸다던 가. 후에 가서 할아버지를 이해했다.

   동생이 보고 싶어서 자주 그 집에 드나들었다. 어머니가 아이를 데려오란다고 전하기만 하면 그 여자는 순순히 아이를 업혀주었다. 동생은 그 여자가 부르는 “큰집”, 벅적대는 우리 집으로 가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아이는 좋을 때면 끄익끄익 이상한 소리를 냈다. 등에 와서 업힌다. 나는 등 뒤에 내 팔을 뻗어 손바닥 위에 동생의 양다리를 받쳐준다. 그러면 그는 경마수가 말을 타고 구르듯 등에서 막 구른다. 나도 경마가 되어 덩겅덩겅 뛴다. 등에서 전해오는 어린 동생의 기쁨이 인단 먹은 가슴같이 싸아했다. 그 길었던 벽돌담은 한 순간으로 달리는 경마장으로 변했다.

   동생은 메가네쟁이의 사랑 속에서 잘 자랐으며, 다섯 살로 접어드는 해에 8.15해방을 맞았다. 그 여자는 과거 사회주의 사상으로 감옥살이를 한 공로로 여성동맹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여자로는 최고의 지위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공산당을 뱀같이 싫어했다. 그녀가 공산당이 되는 것을 극구 반대했으나 그녀는 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여자를 떠났다. 그 후 그녀는 전 같이 집에 있는 시간도 없었고, 동생은 아이를 돌보는 사람에게 맡겼다.
   식구들은 의논했다. 아버지가 그 여자를 떠났는데 어째서 상덕이는 거기에 두어야 하는가. 그 여자가 아무리 무서워도 집에 데려와야 하겠다는 결론이 났다. 항상 허가를 맡고 데려오던  상덕이를 이번에는 가만히 가서 데려오라는 어머니의 청이다.
   나는 그 여자 집으로 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집에 아무도 없다. 동생은 나를 보자 달려와서 내 목에 감겼다. 나는 떨리는 몸을 가다듬으며 바삐 아이를 둘러업었다. 달렸다. 숨이 끊어지게 달렸다. 동생을 업으면 항상 짧았던 그 담 길은 그 날은 짧지 않았다. 한 숨에 달려 집에 왔다. 식구들은 함성으로 우리를 맞았다.  

   아이를 가운데 두고 방 안은 기쁨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 때였다.  “내 상덕이 내놔라” 하며 메가네쟁이가 들어 닥쳤다. 우리는 파랗게 질렸다. 이젠 옛날의 메가네쟁이가 아니었다.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여성동맹 위원장이다. 어머니는 재빨리 상덕이를 내게 업혀 옆문으로 내 보냈다. 건너 베란다 위의 장독대에 올라가 숨었다. 아래채에서의 고함소리가 위에 까지 들려왔다. “형님(어머니) 상덕이 내 놓소. 나는 상덕 없인 못 사오. 안 내 놓으면 다 죽이고 나도 죽겠오.” 하며 허리춤에서 부엌칼을 내 들었다 한다. 한참 만에 어머니가 장독대에 올라와 상덕이를 안고 내려갔다. 나는 무섭고 분해서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이런 일이 있고 얼마 후 우리는 면밀하게 계획을 짜고 상덕이를 빼 왔다. 낮에는 다른 집에 두고 밤에만 어머니 곁에 있게 했다. 그런 어느 날 밤, 어머니가 보니 모기장에 얼굴을 바싹 대고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빗질하지 않은 머리가 한 강줄인 메가네쟁이었다. 어머니는 너무 놀라서 누구요 누구요 헛소리 같이 질렀다. “형님, 나요. 상덕이 너무 보고 싶어 왔오. 형님, 아이 좀 보게 해 주오” 하며 애걸을 했다. 여자는 잠겨진 대문을 홍길동같이 넘어서 들어온 것이다. 상덕이를 안은 여자는 아이 위에 한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어쩔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묵묵히 돌아서더라고 어머니는 들려주었다.

   이런 일들이 있은 이듬 해 늦은 봄, 우리는 3.8선을 넘어 이남으로 들어왔다. 모든 궂고 좋은 날들을 뒤에 하고, 또 미군이 뿌리는 DDT 가루로 동물이 된것 같은 기분이 되었어도 기뻤던 것은, 공산당을 피해 나온 기쁨도 컸지만, 이제 상덕이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에서였다.

   오십 년도 훨씬 전 일이다. 그 때 그 일들이 왜 이렇게 가슴 아프게 생각되는지 모르겠다. 속이 타서 가슴에 재가 소복이 들어앉은 내 어머니! 어떤 일이나 묵묵히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집안에 평화를 깔았던 내 어머니. 성인 같았던 내 어머니를 어찌 내가 가슴 가득히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내 아버지! 골프 치듯 오락같이 첩을 두고 살았지만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았으리라.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었겠지. 나는 그 분이 살아온 인생을 탓할 마음이 없다. 그는 가장의 본분을 훌륭히 지켜온 내 아버지다.
   메가네쟁이! 나를 몇 번을 기쁘게도 했지만, 더 많이 슬프게 했던 그 여자. 그러나 한 달도 못 된 핏덩이를 품에 안고 밤 내내 자장가를 부르던 여자. 유모의 국그릇에 자기 국을 덜어 부우며 젖이 더 나기를 바라던 그 사랑. 그 사랑을 우리는 묵살하고 동생을 비정하게도 떼어 왔다. 우리에게 다른 길은 없었을까. 이제 나도 그 여자의 아픔을 아는 나이가 되어 그 때의 일들을 회상한다. 가슴이 아리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아픔은 죽음과 같다. 우리는 그 여자에게 살아서 죽음을 안겨 주었다.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온 그 날, 그 사람들은 이제 다 가고 없고 아픔만 남았다.

   긴 때도 있었고 짧은 때도 있었던 벽돌담은 오십 여 년 후인 지금도 벽돌 한장 한장을 셀 수 있을 것 같이 선명하다. 비록 그렇게 살아온 숙명의 저변은 가늠할 길이 없지만 그 추억은 내게 영원히 남으리라.

   *내가 작년 칠월(1998)에 쓴 글을 굳이 여기에 제출한 이유가 있다. 육형제 중 막내인 글 속의 동생이 얼마 전 암 선고를 받았다. 지금 그는 위를 떼어내고 실의에 잠겨있다. 울면서 쓴 이 글 위에 그의 발병은 슬픔을 더 얹는다. 나는 우리가 그를 얼마나 아꼈는가를 전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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