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김치 맛, 전라도 묵은 지
2007.02.13 09:38
지난 2월 7일 이곳 LA 타임즈 음식 면(food section)에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전라도 김치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이 신문의 Linda Burum 기자가 “SO YOU THINK YOU KNOW KIMCHI? "라는 제목으로 쓴 기사에서 ‘푹 숙성된 묵은 지, 한반도 남쪽 전라도에서 온 오래된 김장김치가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기사를 보면서 묵은 지에 관련된 여러 가지 추억이 생각났다. 어릴 적, 어머니가 김장을 하실 때 이런저런 심부름을 했었는데, 김치를 담글 때 어머니는 먹을 순서에 따라 간을 맞추셨다. 마지막에 먹을 김치는 소금으로 범벅을 하다시피 짜게 담아두셨다.
봄이 되면 묵은 김치가 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김치가 짜면 물에 행궈 먹기도 했다. 된장에 넣어 둔, 무 고추 짱아치 등과 함께 묵은 지는 대표적인 여름 반찬이었다.
묵은 지가 진짜 맛있고 고맙게 생각되던 때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광주에 방을 얻어 자취를 했는데 자취생에게 반찬은 늘 걱정거리였다. 김장김치가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봄부터 여름까지가 문제였다. 허지만 노랗게 삭힌 묵은 지가 있어서 늘 든든했다. 묵은 지 한 가닥이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어쩌다 돼지고기라도 한 근 사다가 찌개를 만들면 그 맛이 어디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여름철에 먹는 묵은 지는 깊은 맛이 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은 게 김치였다.
맛있게 먹었던 묵은 지를 미국에 온 다음 한 동안 먹어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재작년 LA에서 열린 ‘광주김치대축제’에서 묵은 지를 사 먹을 수 있었다. 몇 포기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오래오래 먹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묵은 지를 이제 미국인들이 덩달아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들의 입맛을 돋우워 준 묵은 지가 미국인의 입맛을 길들이고 있는 것이다
LA 타임즈의 음식 면은 한 식당을 대박으로 이끌 만큼 명성과 권위를 갖고 있다. 이 신문은 미국의 김치수도라 일컫는 LA에 있는 ‘오모가리’ 식당을 지적하면서, 한국 전통의 김치는 단순한 매운 맛이 아니라 갖은 양념과 손맛, 그리고 장시간의 숙성에 그 맛의 비결이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한국 광주에서 특별히 수입된 묵은 지로 만든 김치전, 김치 볶음밥은 입맛을 돋우는 훌륭한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이 식당은 ‘진정한 김치 맛’을 느끼러 온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안내했다.
기자는 ‘오모가리’란 말은 전라도에서 옹기로 만든 그릇을 일컫는 단어라고 설명하면서 다른 지방에서는 뚝배기라는 말로 부른다고 했다. 실제 사전을 찾아보니 그 말은 국어사전에 나와 있지 않았다. 두툼한 시어사전을 펼쳐보니 거기에 ‘오가리 질그릇잔’ 이라고 적혀있었다.
웬만한 사전에는 나와 있지도 않은 말을 기자는 자세하게 얘기해주고 있다. 기사는 이 식당의 위치와 영업시간, 그리고 음식의 가격까지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마침 그 식당 주인을 잘 아는 후배로부터 LA타임즈에 기사가 나간 다음날부터 손님이 미어터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즐거운 소식이다. 쉽지 않은 기회가 한국인 식당에 온 것이, 그것도 전라도 묵은 지로 만든 음식으로부터 온 소식이기에 더욱 기쁘다. 모처럼 온 이런 행운이 식당주인은 물론 전라도 묵은 지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뉴스가 되리라 생각한다.
전라도 김치가 미국인의 입맛을 잡아가고 있다. LA에서 시작된 이 기쁜 소식이 뉴욕에서도 시카고에서도, 전 미국에서 들려왔으면 좋겠다. 진정한 김치의 맛, ‘전라도 묵은 지’의 맛을 파리에서도 런던에서도, 세계 곳곳에서 맛 볼 수 있게 된다면 더욱 좋겠다.
<2007년 2월 14일 광주매일>
이 기사를 보면서 묵은 지에 관련된 여러 가지 추억이 생각났다. 어릴 적, 어머니가 김장을 하실 때 이런저런 심부름을 했었는데, 김치를 담글 때 어머니는 먹을 순서에 따라 간을 맞추셨다. 마지막에 먹을 김치는 소금으로 범벅을 하다시피 짜게 담아두셨다.
봄이 되면 묵은 김치가 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김치가 짜면 물에 행궈 먹기도 했다. 된장에 넣어 둔, 무 고추 짱아치 등과 함께 묵은 지는 대표적인 여름 반찬이었다.
묵은 지가 진짜 맛있고 고맙게 생각되던 때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광주에 방을 얻어 자취를 했는데 자취생에게 반찬은 늘 걱정거리였다. 김장김치가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봄부터 여름까지가 문제였다. 허지만 노랗게 삭힌 묵은 지가 있어서 늘 든든했다. 묵은 지 한 가닥이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어쩌다 돼지고기라도 한 근 사다가 찌개를 만들면 그 맛이 어디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여름철에 먹는 묵은 지는 깊은 맛이 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은 게 김치였다.
맛있게 먹었던 묵은 지를 미국에 온 다음 한 동안 먹어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재작년 LA에서 열린 ‘광주김치대축제’에서 묵은 지를 사 먹을 수 있었다. 몇 포기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오래오래 먹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묵은 지를 이제 미국인들이 덩달아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들의 입맛을 돋우워 준 묵은 지가 미국인의 입맛을 길들이고 있는 것이다
LA 타임즈의 음식 면은 한 식당을 대박으로 이끌 만큼 명성과 권위를 갖고 있다. 이 신문은 미국의 김치수도라 일컫는 LA에 있는 ‘오모가리’ 식당을 지적하면서, 한국 전통의 김치는 단순한 매운 맛이 아니라 갖은 양념과 손맛, 그리고 장시간의 숙성에 그 맛의 비결이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한국 광주에서 특별히 수입된 묵은 지로 만든 김치전, 김치 볶음밥은 입맛을 돋우는 훌륭한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이 식당은 ‘진정한 김치 맛’을 느끼러 온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안내했다.
기자는 ‘오모가리’란 말은 전라도에서 옹기로 만든 그릇을 일컫는 단어라고 설명하면서 다른 지방에서는 뚝배기라는 말로 부른다고 했다. 실제 사전을 찾아보니 그 말은 국어사전에 나와 있지 않았다. 두툼한 시어사전을 펼쳐보니 거기에 ‘오가리 질그릇잔’ 이라고 적혀있었다.
웬만한 사전에는 나와 있지도 않은 말을 기자는 자세하게 얘기해주고 있다. 기사는 이 식당의 위치와 영업시간, 그리고 음식의 가격까지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마침 그 식당 주인을 잘 아는 후배로부터 LA타임즈에 기사가 나간 다음날부터 손님이 미어터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즐거운 소식이다. 쉽지 않은 기회가 한국인 식당에 온 것이, 그것도 전라도 묵은 지로 만든 음식으로부터 온 소식이기에 더욱 기쁘다. 모처럼 온 이런 행운이 식당주인은 물론 전라도 묵은 지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뉴스가 되리라 생각한다.
전라도 김치가 미국인의 입맛을 잡아가고 있다. LA에서 시작된 이 기쁜 소식이 뉴욕에서도 시카고에서도, 전 미국에서 들려왔으면 좋겠다. 진정한 김치의 맛, ‘전라도 묵은 지’의 맛을 파리에서도 런던에서도, 세계 곳곳에서 맛 볼 수 있게 된다면 더욱 좋겠다.
<2007년 2월 14일 광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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