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 걸렸다
2007.06.22 09:45
오래도 걸렸다 “미주문학” 2003년
아버지께서 내 팔목을 꽉 잡고 계셨다. 그 뜻은 내가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조르지도 못하며, 더욱이 우는 일은 당치도 않다는 강권이었다. 나는 터져 나오는 슬픔을 가까스로 참으며 아버지 손에서 놓여나기만을 기다렸다. 어머니께 거머리 같이 묻어 다녔던 내 나이 여섯 살 때 일이다. 기억하기로는 유명한 연극단이 우리 고장에 왔다. 아버지는 큰마음 먹고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인 곰보어머니를 극장에 보내신 것이다.
이 어릴 적 일을 왜 이렇게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외딸인 나를 퍽 귀여워 해 주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그런 강권을 썼다는 사실이 내게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 헌데서 놓여난 나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쳐다보며 어머니를 그려 한없이 흐느껴 울었다.
그렇게 부모에게 의지하고 그리워하며 산 스물 세 해는 어느덧 지나가 버렸다. 이제 나는 이런 육친의 인연을 딛고, 내 생을 맡길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했다. 생소하지 않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 남자는 우리 식구와는 생김새도 달랐고, 풍김도 달랐고, 거동하는 것도 달랐다. 중매 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가 또 잘 생겼다고도 했다. 나는 이렇게 날카로운 형의 사람도 잘 생겼다고 하는가 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남편을 차차 하늘의 별로 알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에서 항상 반짝였다. 그가 반짝이지 않을 때도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빛은 반짝였다. 술을 고래같이 마셔도 나에게 그는 코에서 물을 높이 뿜고 바다를 누비는 멋진 고래로 보였다. 행복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그런 그에 기대어 삼십 년을 살았다.
남편이 세상을 떴다. 이제 장성한 자식들이 나를 위해 부모, 남편, 자식, 삼역을 곡예 하듯 해냈다. 나도 뼈가 으스러지도록 그들의 갈구를 읽으며 살았다. 우리 서로는 이제 사역, 오역도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
그런 날들을 다 지나고 나는 어느 하루, 내 혼자 서기 결정을 내렸다. 혼자는 못 산다며 뇌 오던 말이 허물어졌다. 나는 나 자신도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루도 혼자가 돼 본 적이 없는 날들이었다. 부모 밑에서, 남편 밑에서, 자식 곁에서 일흔 세 해를 산 날들을 털어 버렸다. 칠십 삼년 만에 혼자서기가 시작된 것이다.
혼자서기 첫 날 아침이다. 아래층 홀에 커피와 도나쓰가 준비되어 있다 한다. 25쎈트로 마실 수 있는 커피를 생각하니, 토요일 아침의 작은 아들집 식탁에 생각이 미친다. 늦게 일어난 며느리와 아들이 상 위에 준비된 커피 잔을 본다. 또 막 사다 놓은 ‘베이글’도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그들은 처음 있는 일 같이 내게 고마워한다. 두 사람의 미소가 천금의 값을 한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그런 미소를 볼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남의 손에서 받아먹은 커피 맛은 솔직히 말해서 일품이었다.
나는 저녁거리로 T.V 디너를 샀다. 손을 까딱 않고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사치다. 그런 나는 또 아들 집 저녁상이 떠오른다. 오늘은 무엇을 해 먹일까, 항상 깜짝 쇼를 하는 기분으로 저녁을 준비했다. 가끔은 마술사 ‘카퍼필드’가 된 양 내가 멋지다. 그들은 내게 골백번 절을 하며 저녁을 먹는다. 내 피로가 단김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 이 곽에 든 T.V 디너는 너무 맛이 없다. 아무리 칼도마를 펴놓지 않고 먹는다 해도 너무 했다. 그렇지만 나는 나 하나를 위해 가스 불을 켤 의사는 정녕 없다. 다만 미국 음식에 정 떨어진다는 불평이나 투덜거릴 뿐이다. 여섯 개나 사 왔으니 나머지는 어떻게 먹을지 걱정이다. 그러나 이 ‘편하다’는 것의 매력은 물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금방 중독이 되어버렸다. 나는 생각한다. 이제부터 이렇게 살게 되겠지. 그렇다면 그 음식 맛 쯤 무엇이 그리 대수겠는가, 가슴을 쭉 편다.
맛도 상관이 없다면 또 그 남고 남는 시간의 풍요는!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의 간지러움이다. 시간의 풍요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도 풍성하게 하다니. 나는 그 신비에 다만 비싯비싯 웃고 있을 뿐이다. 때가 없다. 무시로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 그렇다고 내가 값진 일 무엇인가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기분으로 이런 시간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놓여난 들짐승이 된 나를 딸들이 참 좋아한다. 자기 딸들의 친정이 되어줄 나이에 자기 친정을 찾았다. 무시로 전화하고 무시로 드나든다.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엄마 품에 안긴 기분인가 부다. 큰며느리는 큰며느리대로 여기는 임시이고, 이제 십여 년을 같이 산 자기 집에 들어와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짐스러운 존재가 늙은이다. 아무도 뒷일을 맡기가 무섭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내가 결단을 내린 것도 이래서 아니었던가.
그런 중 큰오빠가 세상을 떴다. 여든 살이었다. 오빠가 의식을 잃기 전, 나는 다행히도 그와 여러 시간을 보냈다. 내가 곧 노인 아파트에 들어간다고 보고 하니 오빠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혼자 될 내가 측은했던 모양이다. 나는 오빠의 그 미소를 이해했다. 그러나 오빠는 내 마음을 다 알아주지 못한 것 같다. 나는 항상 오늘이 행복한 사람이다. 과거의 오늘도 그랬고 지금의 오늘도 그렇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나다. 그런 나를 알리지 못하고 그를 슬프게 했던 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람이란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다 가는 것-. 어머니 영전에 어머니 자식 육 형제가 아직 살아있다고 바친 시조도 이제 소지(燒紙)가 되었다. 한 사람씩 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소지가 되기 전에 혼자서기 한번 해 보자. 아무튼 내 혼자서기는 오래도 걸렀다.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3699 | 보석을 수집하듯 | 배희경 | 2007.07.10 | 49 |
| 3698 | 상처 (2006년 미주 한국일보 문예공모 단편소설 당선작) | 윤금숙 | 2007.07.09 | 62 |
| 3697 | 원주일지-향로봉- | 안경라 | 2007.07.08 | 48 |
| 3696 | 나무늘보 | 윤석훈 | 2007.07.08 | 61 |
| 3695 | 구르는 나무 | 이성열 | 2007.07.08 | 40 |
| 3694 | 전신주 | 윤석훈 | 2007.07.08 | 49 |
| 3693 | 인간다운 색 이란 ? | 이 상옥 | 2007.11.08 | 52 |
| 3692 | 위대한 승자 계백 장군 | 이 상옥 | 2007.11.05 | 48 |
| 3691 | 누수 | 구자애 | 2007.06.30 | 46 |
| 3690 | 먼 후일 | 정용진 | 2007.06.30 | 50 |
| 3689 | 폐선 | 구자애 | 2007.06.26 | 44 |
| 3688 |
여호와의 거시기는 & 아무거나
| 박성춘 | 2007.06.25 | 48 |
| 3687 | 단신상(單身像) | 유성룡 | 2007.06.24 | 45 |
| 3686 | 갈매기의 무대 | 배희경 | 2007.06.24 | 42 |
| 3685 | 성경 (크리스천 헤럴드) | 김영교 | 2007.07.03 | 51 |
| 3684 | 화려한 외출 | 김영교 | 2007.06.23 | 48 |
| 3683 | 갸재미 식해 | 배희경 | 2007.06.23 | 48 |
| 3682 | <축시> 미주한국일보 창간 38주년 | 정용진 | 2007.06.23 | 46 |
| 3681 | 마지막 숙제 | 성민희 | 2008.03.26 | 41 |
| » | 오래도 걸렸다 | 배희경 | 2007.06.22 | 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