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집에서
2004.11.13 11:19
평생,
가을 들판보다 더 누런 외투 입고
세월을 되새김질하는 소를 본다
볏단이 작두 날을 받으며 여물이 될 때
"게으른 사람은 죽어 소된다"
소가죽 땀흘리던 주름진 할아버지,
생애 가득 곡간에 여물들 쌓아두셨다
어젯밤,
날 찾아 온 한 마리 소
기억의 비 쏟아지는 들판 거닐다
웃돌게 자란 푸념의 잡초를 밟는다
술병들 사이 빈 잔 꾹꾹 채우며
"한형, 시골 가 농사나 지었으면 좋겠어"
파삭 삭은 얼굴 나를 앞에 두고있다
술잔에 어리는 오래된 야망 굳어져
구겨 넣듯 창자의 벽 넘어가면
그렁그렁한 눈에 새벽 비 쏟아지겠다
우거지 세상을 살다 응고된 혈액
숭숭 구멍난 혈관을 통과하는 의식
덜 깬 취기가 선지처럼 부서진다
"김형, 열심히 선지 먹고 소되자고"
소 된 할아버지 들판에 서 계시고
싱싱한 풀밭 같은 아침을 열어
팔짱끼고 걷는 두 사람의 네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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