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진한 돈

2015.08.07 10:17

김학천 조회 수:152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라마는/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고려 말 문신 이조년의 유명한 시조인 ‘다정가’이다. 배꽃이 활짝 핀 달밤에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를 들으며 봄의 정취에 빠져 있는 정한을 그린 노래다.

  하루는 이조년이 형 이억년과 함께 길을 가다가 우연히 황금덩어리 둘을 발견했다. 둘이는 이를 하나씩 나누어 갖고 배를 타고 가는데 동생이 갑자기 갖고 있던 금 덩어리를 물속에 던져 버리는 게 아닌가? 형이 깜짝 몰라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동생은 “제가 왜 황금의 귀함을 모르겠습니까? 헌데 이 황금덩어리를 갖고 있자니 문득‘형이 없었더라면 내가 그 둘을 다 가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나쁜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 황금이 평소에 좋았던 우리 형제의 우애에 금이 가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 버렸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형도 갖고 있던 금덩이리를 물속에 버렸다. 이 후 그 곳을‘투금탄(投金灘)’이라 불렀다고 일화가 전해온다. 황금보다는 형제애를 더 귀하게 여긴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그렇지 못한 가보다. 돈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어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도 돈 때문에 빚어진 이야기다. 방탕한 아버지와 네 아들 그리고 고리대금업자의 첩인 그루셴카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돈에 대한 욕망으로 인한 인간의 가장 파괴적인 범죄를 그렸다.
  근자에 롯데기업 형제들의 경영승계 암투를 보면서 두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난을 피해 19세에 현해탄을 건너가 껌 하나로 시작해 오늘의 거대 기업을 일구어낸 신격호 회장이 껌 제조사를 창업하며 회사명을 고민하던 중 불현듯 떠오른 이미지가 바로‘롯데’였다. 그는 `롯데'라는 이름이 떠올랐을 때 충격과 희열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문학 지망생이었던 그가 유난히 애착을 느낀 작품이 바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고 그 속의 여주인공‘샤롯데’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 이름 뿐 아니라 여러 제품
브랜드와 서비스 명칭들에도‘샤 롯데’의 이름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그리고 임직원들에게는 베르테르의 사랑처럼 일과 삶에 열정을 다하라'고 말하곤 했다 한다. 그 열정의 삶 끝자락에 자식에게서 해임당하는 일 까지 당했다.
  더 귀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값진 것이라도 미련 없이 버리는 이조년 형제와 돈을 위해 고령의 부친까지 동원해 치부를 들어내고 있는 형제를 보며 이번 분란이 우연인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형제위수족(兄弟爲手足)’이라 하여 형제는 손발과 같아 한 번 잃으면 다시 얻을 수 없으므로 서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했거늘 재벌가 형제들도 투금탄의 형제같이‘옥 같은 형, 금 같은 아우(玉昆金友)’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무리한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겐 아무래도‘형제는 타인의 시작’이라는 속담처럼 물보다 피가 아무리 진하다 해도 그 피보다 더 진한 게 돈과 권력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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