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맞잡은 담쟁이

2017.02.27 23:36

서경 조회 수:9167


  요즘은 내 주변에 보이는 풍경을 찍어 내 느낌 그대로 포토 에세이를 쓰고 있지만 첫 시작은 그게 아니었다.  몇 년 전인가 보다. 
  어느 날, 리서치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사진이 내 눈을 붙잡았다. 담쟁이 사진이었다. 비 온 날 아침에 찍었거니 하고 짐작이 가는 사진으로 내 좋아하는 연초록 색상도 곱지만 두 손을 맞잡은 듯한 두 줄기 담쟁이가 강한 메시지를 가지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
  흔히, 담쟁이는 벽을 타고 뻗어가는데 이 담쟁이들은 어디서 그 벽을 잃어버렸는지 아래로 처져 있었다. 길을 잃은 담쟁이. 어디로 가야 하나. 갈 길을 멈출 순 없는데...
  바로 그때, 또 다른 쪽에서 벽 잃은 담쟁이 한줄기가 뻗어와 가만히 손을 잡아준다. 벽, 그것도 흙 한 줌 없는 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운명을 지닌 담쟁이가 아니던가. 
  이제 타고 오를 그 벽마저 잃어버렸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불안과 두려움에 차 두리번거릴 때, 가만히 다가와 손을 잡아주는 이. 정말 눈물겨운 격려요 위로가 아닌가.
  나는 그 사진을 찍은 작가를 찾아 들어가 봤다. 이름은 김동원. 그는 사진도 찍고 시평도 쓰는 작가였다. 한국 현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훌륭한 작가였다. 좋은 사진과 글이 너무도 많았다. 
  탐이 났다. 그의 멋진 사진에 내 느낌을 얹어 보고 싶었다. 이미 그가 하고 있는 작업이었지만, 난 감상자의 위치에서 적어 보고 싶었다. 
  발로 뛰며 찍은 귀한 사진을, 앉아서 써도 좋으냐는 내 염치없는 부탁을 그는 주저없이 받아 주었다. 그의 겸손된 마음이 또 한 번 전해져 왔다.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은 그의 심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그가 부지런히 발로 뛰어 찍어 온 사진 중,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진들만 골라 한 장 한 장 포토 에세이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 가끔은 다른 각도에서 본 내 감상을 그의 글 밑에 답글 형식으로 올려 놓기도 했다. "이런 말을 들려 주더군요!"하는 나의 보고서이기도 하다. 
  며칠 째 비가 내리고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 들린다. 저만치서 봄이 오고 있는 게 아니라, 봄은 벌써 이만치 와 있다. 봄이 오면, 난 그 연초록 평화와 함께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뻗어가는 두 담쟁이 사진이 떠오른다.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오르며 기어이 잡으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건 푸른 하늘이 아니라, 벽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손이 아니었을까. 두 손 잡고 벽을 넘자고 내미는 여린 손, 손들. 설령, 부빌 언덕도 없고 타고 넘을 벽마저 없어도 우리 두 손 더우잡고 가자는 간절한 바램이 아니었을까. 인간에게 있어 '벽'은 절망의 은유지만, 의지하면서 타고 올라가야 하는 담쟁이에게는 부빌 언덕이요 '희망'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인간사는 애와 고로 봄날이 멀었건만, 사방팔방 꽃망울 터지고, 까칠한 나뭇가지에 붉은 기운 감돈다. 봄이 오고 있다. 이 봄의 향연 속에서 꽃도 아닌 잎만으로도 희망을 얘기해 주는 담쟁이 사진을 다시 드려다 본다.
  아마, 남의 쪽방에서 '홈리스 독거 노인'(?)으로 살아가는 내 현 처지가 자못 그들을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담쟁이 사진 밑에 썼던 글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며 나는 '벽'을 '희망'이라 고쳐 쓴다. 
 
  <두 손 맞잡은 담쟁이> 
 
한 줌 흙도 없고 
의지하고 넘어야할 벽마저 없을 때
우린 손이라도 맞잡아야 한다. 
 
허공의 길은 막막하나 
하루하루 삶을 견디다 보면
의지하고 타오를 수 있는 '벽'이 나타나리니. 
 
그때,
우리는 그 '벽'의 이름을 
'절망'이라 부르지 말자. 
 
  < 사랑의 담쟁이 > 
 
잎은 잎을 낳고...
그 잎은 또 잎을 낳아...
담쟁이는 계속 사랑의 잎을 피워내며 뻗어갑니다.
길이 없으면, 
벽을 타고서라도 기어오르고 
그 벽마저 끊기면 벽을 넘어
다시 길을 이어갑니다.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사랑엔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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