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의 봄철 나들이

2017.03.14 00:37

서경 조회 수:16


    화창한 일요일 오후, 딸과 함께 봄철 나들이에 나섰다. 데스칸소 가든에서 열리는 'Cherry Blossom Festival'. 꽃보기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몇 주 전부터딸은 티켓을 사 놓고 오늘을 기다려 왔다.
  딸과의 봄철 나들이. 어디 간들 즐겁지 않으랴.
   어릴 때부터 대화를 즐겨 나누어 온 우리는 만나면 할 얘기가 많다. 생활 보고에서부터 문화와 예술, 심지어 금기시 한다는 신앙, 종교, 정치 얘기까지 우리의 주제는 걸림이 없다.
  가끔, 내 나이엔 모를 것같은 얘기도 척척 받아주면 딸은 '경이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이 애가 엄마를 뭘로 보나?' 하는 묵언의 눈흘김 사인을 보내며 함박 웃음을 짓기도 한다.
  봄철 기운이 완연한 탓인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람들이 많이도 왔다. 꽃구경만 해도 재미있을 판에, 사람 구경까지 하니 신이 난다. 난 사람이 좋다. 아무리 자연이 아름다워도 더불어 즐길 사람이 없으면  곧 우울증에 걸리고 말 거다.
  체리꽃 페스티벌 치고는 체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지 않아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붉은 동백꽃과 자목련이 많아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색색의 튜울립도 푸른 잔디 위에 수를 놓아 오색보를 연상케 했다. 고유 색깔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멋진 예술품으로 태어난 오색 조각보룰 볼 때마다 감탄한다. 우리도 제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멋진 오색 조각보를 만들어낼 수 있으련만, 색깔론을 들어 목청 돋우는 걸 보면 '심히' 안타깝다.  
  꽃들을 보며 배운다. 제 모양과 색깔을 지니고 살면서도 서로 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러면서도  동백은 자목련이 되기를 고집하지 않고 자목련은 동백이 되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모두가 '하느님께서 앉혀주신 그 자리'에서 제 구도를 지키며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일본식 카페 아래로 흐르는 개울물도  이 돌 저 돌 어루만지며 유연하게 흘러간다. 여울목을 만나면 돌아가는 지혜도 있다. 그때 만드는 곡선의 물살은 또 얼마나 예쁜가.
 모두가 흘러가는 구름처럼 집착없이 잡념없이 평화로이 살아간다. 우리도 이처럼 살아갈 순 없을까. 내 마음에 꽃물을 들이고 평화로움을 끌어 들인다면 같은 주장을 한데도 굳이 화를 내고 목청을 높일 필요가 없다.손가락은 왜 자르며, 분노로 목청 돋우다가 어이해 죽기까지 하는가.
  다 같은 민심의 집회라도 난 촛불집회를 선호한다. 촛불 집회의 승리는 평화의 승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청 높인 김평우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조근조근하게 설명하던 강일원은 우리를 미소짓게 했다. 주장은 옳아도, 방법이 온당치 못하면 꼭 불화를 일으킨다.
  태양과 비가 같은 하늘 아래 못 있을 것같아도 함께 있음으로써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지 않던가. 여우비는 또 어떤가. 화사한 태양빛을 받으며 무지개비로 쏟아지던 여우비를 보면 즐거운 탄성이 절로 나지 않던가.
  공존의 미학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동색으로의 합일이 아니라, 통일과 변화의 멋진 어울림이다. 초록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여기도 초록, 저기도 초록이면 개마저 심심해 한다고 이상은 <권태>에서 말했다. 설령 통일이 된다해도, 동색으로만 일치 시키려하면 분명 혼란만 가져올 터.
  사랑은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한다는 것. 온유한 사람과 살면 강한 사람도 온유해 지듯,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것.
  우리는 통일에 앞서 미리 성숙된 시민 의식과  가치관의 확립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분을 삭이고 그 자리에 사랑을 들여 놓아야 한다. 내 마음에 평화를 지녀야 평화를 나누어줄 수 있을 거 아닌가.
  때로, 우유부단한 태도로 '회색분자'라는 오명을 둘러 써도 좋다. 오히려 , 조용히 기다려주는 '침묵의 민심'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번에도 거리에서 소리 친 사람 수보다, 제 위치에서 하루의 일과를 성실히 지켜온 소시민들의 수가 더 많았다. 우리는 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몇 백만이 나왔다고 서로 숫자 싸움을 할 때, 침묵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조용했다. 우리 대한의 인구가 몇 천만인가. 바닷물에 비하면 한 바가지도 안 되는 물을 떠 내곤 전체를 떠낸 듯 으시대는 우를 범해선 안되리라.지나가는 갈매기도 실소를 터뜨릴 일이 아닌가.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투표로 주장하면 된다. 그리고 '팩트'를 가지고 논리 정연하게 맞서야 한다. 떠도는 구름처럼 바람 부는 쪽으로 우- 하고 밀려갔다, 바람이 방향을 틀면 다시 와- 하고 따라갈 건가. 신념과 관의 확립은 확고하되, 그 마음 저변엔 '사랑'이 깔려야 한다고 믿는다. 데모나 대중 집회만이 능사가 아니지 않는가.
  미안스럽게도, 내 목소리가 '살짝' 높아지려 한다. 아니, 이미 옛성깔이 살아나 목소리가 좀 높아졌다. 아서라, 때로는 정몽주의 모질고 독한 '단심가'보다 이방원의 두리뭉실한 '하여가'가 현명한 처신이 될 수도 있는 법.
  세월따라 나도 점점 회색분자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어령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흑과 백이 한걸음씩 다가와 공존하는 'Gray Zone'이 더욱 넓어졌으면 한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우는 '부분 집합'이 아니라, 남과 북이 완전하게 하나 되는 '진부분집합' 통일은 언제쯤 올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 날이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다시 꽃들에 눈을 준다. 자목련 흐드리게 핀 곁에 연밭이 퍼져 있다. 연꽃 잎만 물 위에 떠 있고 화사한 핑크빛 연꽃은 보이지 않는다. 꽃이 없어도 연잎만으로도 자목련의  자태를 한껏 돋우어 준다.
  그렇다. 연잎은 자목련의 배경이 되어주고 있었다.  내 누군가의 온기가 되어주지 못했듯, 일찌기 내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주지 못했다. 주장이 강했고 그것이 옳은 줄만 알았다. 방법의 유연성이나 온유함을 몰랐다.
  '찔러도 피도 안 날 것같은 여자'란 말은 나에 대한 오명이다. 다 같은 나인데도 누군가는 나를 '삭풍'이라 하고, 누군가는'미풍'이라 불렀다. 상당히 감정적이고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뚜렷했다. 젊은 날의 내 초상이다. 
  지금도 인간 수업에 정진 중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 한다. 세월따라 익어 가노라면 언젠가는 추수될 날도 있겠지. 꽃은 곧 지고, 꽃 진 자리에 열매는 맺는다.
   꽃그늘 아래 서서 잠시 상념에 잠긴다.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 참으로 귀한 날이다. 꽃과 더불어 오늘을 추억하려 몇 장의 사진을 찍어 둔다. 찰라의 즐거움이 훗날엔 애틋한 추억이 된다는 것을 진작에 알기에.
  사진이 예쁘게 나왔다. 실물보다 늘 예쁘게 나오는 사진. 이것도 아직 고마와할 일이 아닌가. "딸아, 엄마가 사진엔 아직 예쁘게 나오네? 주름 투성이 할맨 줄 모르고, 다 속겠지? 하하!" 나도 웃고 딸도 웃었다.
  딸아, 고맙다! 오늘 하루 즐거운 봄철 나들이를 시켜주어서. 딸아, 넌 알고 있니?  아름다운 꽃들이 많기도 하지만, 너는 내 가슴에 살아 있는 오직 한 송이, '시들지 않는 꽃'이라는 것을.
  중천에 떴던 태양이 서편 하늘을 향해 설핏 기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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