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아름다운 선물

2018.07.29 07:11

서경 조회 수:978

아름다운 선물.jpg



세상의 모든 선물은 아름답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뭘까.

아마도 애틋한 마음을 담은 사랑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탐스런 머릿결을 지닌 금발 아가씨 안젤리카가 오랜만에 가게에 들렀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성품을 지닌 천사 아가씨다.

언제나 생글생글 눈웃음 짓는 안젤리카를 볼 때마다 덩달아 미소를 짓곤 했다.

그런데 그토록 머릿결이 곱고 숱이 많아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샀던 긴 생머리를 싹뚝 자른 모습이다.

얼마 전에 대학 졸업을 하더니, 뭔가 마음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짧게 자른 모습도 생경하거니와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그 이유가 더 궁금했다.

짧은 머리도 잘 어울리네? 그 긴 금발 머리, 아까워서 어찌 잘랐을까?”

호기심 있는 표정으로 물어 보았다.

아니,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도네이션 했어요!”

? 도네이션?”

예상외의 대답에 난 깜짝 놀랐다.

그 정도 결이 곱고 풍성한 머리카락이라면 돈으로 쳐도 고가의 최상품이다.

! 벌써 네 번 째 도네이션하는 거에요?”

, 그래? 어디에 도네이션 했는데?”

“Pantene이라고 비영리 단체에요.”

몇몇 비영리 단체 이름은 알지만 Pantene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거긴 뭐 하는 곳인데 머리칼 도네이션을 받아?”

, . 머리카락 도네이션 받아 가발 만들어서 필요한 암환자에게 나누어 주는 단체에요. 주로 어린이 암환자에게 준대요!”

호오, 그래? 안젤리카가 착한 건 알지만 그 정도인지는 정말 몰랐네? 퍽 자랑스럽구나!”

나는 안젤리카를 힘차게 안아 주었다.

안젤리카가 머리카락 도네이션을 처음 한 것은 열 살 때부터라고 한다.

소프트 볼 선수였던 안젤리카는 매번 풍성한 머리카락 덕분에 곤욕을 치루어야 했다.

엄마를 닮아 머리숱도 많고 빨리 자라, 처치 곤란이었다.

엄마는 간편한 머리카락 관리와 필요한 사람에게 도네이션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안젤리카를 설득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땀은 범벅이 되는데 머리카락까지 무거워 귀찮던 안젤리카는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단서가 딱 하나 붙었다.

도네이션 하려면, 절대로 하이라이트나 염색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예민한 암환자에게는 모든 게 자연산이 되어야 한다고.

엄마는 덧붙여 설명해 주며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때만 해도 멋모르던 안젤리카는 두 말 없이 승락했다.

머리카락은 3년마다 잘라 도네이션했다.

열 살, 그리고 중학교 졸업 후와 고등학교 졸업 후.

이번에는 대학 졸업 후에 잘랐으니, 4년 만에 잘랐다 한다.

길이는 약 17인치 정도로 보통 사람은 한 번들(묶음 단위) 정도 나오는데 안젤리카 머리카락은 늘 두 번들이 나왔다.

어린이 가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14번들이 필요하다고.

그렇다면, 한 사람의 암환자를 위해 보통 사람 열 네 명이 3년이나 4년 머리카락을 곱게 길러 도네이션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열 네 명은, 3,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하이라이트나 염색, 헤어 커트 등 일체의 여성적 패션 욕망을 버려야 한다.

이 얼마나 눈물겨운 선물인가.

여성의 멋은 헤어스타일에서 거의 50% 이상이 나온다.

샤핑몰 치고 미용실 하나 없는 곳은 없다.

오죽하면, 머리카락이 빠진 암환자들을 위한 패션 용품 비지니스가 성황을 이루고 있겠는가.

각종 패션 가발은 물론, 모자와 스카프에 이르기까지.

내 머리를 잘라 도네이션 한다는 것은 희생을 딛고 피어난 아름다운 사랑의 꽃, 진정어린 마음의 선물이다.

언젠가, 남가주 미스 하이틴에 선발된 여고생이 가게에 왔는데 길게 기른 검은 생머리가 퍽 인상적이었다.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결 고운 머리카락이 조그만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머리카락을 가지고 온갖 법석을 뜨는 십대들을 많이 보아 온 터라, 하이라이트 하나 없는 그녀의 생머리가 천연 기념물을 보는 듯 신기했다.

어쩌면, 이렇게 머리를 예쁘게 잘 길렀느냐고 물었더니, 항암 치료로 머리칼이 다 빠진 할머니 가발을 만들어 드리기 위해 기른다고 했다.

어릴 때 사랑으로 키워준 할머니께 보답하려고 자기 여동생도 같이 기르고 있단다.

이제는 자기들이 받은 사랑을 되돌려 줄 때라며 미소 지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할 말을 잊었다.

나도 손녀를 키우는 할머니.

내가 선물을 받는 듯 가슴이 먹먹해 왔다.

담쟁이 넝쿨처럼 뻗어 나가는 러브 체인.

사랑은 사랑을 낳고, 그 사랑은 또 하나의 사랑을 향해 끊임없이 잎을 피워 나간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이거야말로 신명나는 사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닌가.

팍팍한 사막 같은 삶에도 어딘가 샘은 숨어 있고 푸른 풀 자라는 오아시스가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이 있어, 우리도 사막을 가로 지르는 대상처럼 먼 길 마다 않고 떠날 수 있는 거 아닐까.

오늘, 안젤리카를 통해 다시 한 번 살 만한 세상을 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머리를 곱게 길러 도네이션 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아이들.

그 마음 그대로 곱게 자라길 진심으로 빈다.

 

<작품 후기>

 

작품 <아름다운 선물>은 미 발표작으로 갓 대학을 졸업한 안젤리카가 전해주고 간 미담을 주제로 쓴 글이다. 우리 가게는 샵 인 샵 형태로 이루어진 토탈 비유티 살롱이다. 비유티 제품 판매와 함께 머리부터 발끝까지 총체적인 아름다움을 가꾸어 주는 살롱이다. 일 하는 사람들도 많고 드나드는 손님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저마다 풀어 놓고 가는 삶의 이야기만 건져도 모두 수필감이다. 그야말로 황금어장이다. 1984, <올림픽 에세이> 섹션을 맡아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가 어느 날 비유티 필드로 직업을 바꾸어 버린 것도 내 글쓰기 작업과 무관하지 않다. 이민 온 지 일 이년 정도 되자, 코리아 타운에서만 맴돌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이왕 미국에 왔으니, 미 주류 사람들을 만나 영어도 배우고 삶의 이야기도 좀 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은 탁월했다. 손님이 오면 일하고, 가고 나면 책을 읽거나 글쓰기 딱 좋았다. 베벌리 힐스 쪽에서 일하면서 리즈 테일러를 비롯하여 많은 월드 스타들을 만났다.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도 내 수필감으로 재탄생 되리라. , 남다른 호기심과 친화력으로 손님들과 얘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오늘 쓴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안젤리카와 예쁜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도 곱게 자라길 충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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