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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2009.03.29 23:36

윤석훈 조회 수:281 추천:11

사랑하는 아내,지수에게

  엔젤레스 트럼펫,살구꽃,부겐빌리아가 피어있는 마당에 봄볕이 쏟아지고 있어.적당한 바람이 살아있는 것들을 흔들고 지나가네.벌새의 숨막히는 날개짓으로 인해 꽃은 자신을 열어 새의 밥이 되고 벌새는 공중을 가르며 바람을 만드는 마술사가 되는가 보아.이처럼 작은 사랑들이 펼쳐 놓은 대자연의 잔치상에 앉아 밝고 환한 당신을 그리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21년전,1988년 11월 2일 아마 금요일이었지.방배동 팔래스 호텔에서 만났었잖아.내가 다니던 교회 여집사님께서 친구의 딸인 당신을 소개해 주었던 거,생각나?그 당시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분홍색이 어울리는 여자가 좋았는데 당신은 분홍색 투피스를 입고 나왔었지.얼마나 밝고 환했던지.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 거 같았다니까.이어지는 예리하고도 정감어린 질문들이 당신을 더욱 돋보이게 했었지.방배동 먹자골목에서 대게를 시켜놓고 씩씩하게 포식하는 당신의 소탈한 성격 또한 얼마나 좋았던지.ㅎㅎ 지금 생각해도 기분 좋은 만남이었어.그리고 생생한 그림으로 남아있어,나에겐.

  지난 1년 동안은 우리 결혼 생활 중 최고로 힘든 시기였지.당신의 지혜롭고도 현명한 판단과 믿음과 기도와 의지,그리고 노력이 나를 회복시켰어.다시 살아났어.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사랑의 포옹을 해주신 거야.당신 때문에.정말 고마워.좀 더 편안히 잘 수 있도록 새벽마다 발자국 소리 죽이며 집을 떠나던 당신의 배려와 믿음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지.당신 알아? 당신이 사랑의 마음,믿음의 마음으로 새벽기도 떠나면 침상에 누워서 얼마나 많이 베개깃을 적셨던지.눈물의 정체는 감사였어.당신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그 감사의 몸부림을 통해서 통통히 살지는 영혼의 밥을 먹으며 얼마나 평온해 졌던지.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시는 도구라고 생각해. 정금 같은 믿음을 빚기 위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의지의 표현인 거지. 당신도 나도 이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절대 안될 거라고 생각해. 분주한 세상의 가치들을 조용히 내려놓고 영적 가치를 붙잡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보자. 우리에게 부여된 새마음, 새믿음,새의지를 새부대에 담고 열심히 달려가 보자.내 폐에 내려진 암선고를 통하여 우리에게 내려졌던 고난의 터널이 조금 후에 나타날 축복의 전주곡임을 믿고 나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실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이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아?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어쩌면 당신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내게 구체적으고도 개인적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 왔던 아주 멋지고 감동적인 시간들이 이 봄, 싹을 내고 꽃을 피우려 하네. 거뜬해진 몸으로 다시 일을 하면서 당신을 많이 생각해 보는 이즈음, 당신을 안으면서 흘렸던 내 가슴의 강물에는 봄빛으로 만연한 초록이 범람하고 있어. 모두 다 당신이 풀어놓은 물감 때문이야, 정말 고마워.

  내 정신의 내부에 산재해 있던 어줍잖은 지적 편린들이 독서 지도사 과정을 통해 정리되었으면 좋겠어. 결 고운 영혼의 목소리와 맛깔스런 일상의 무릎이 머물던 자리에서 따뜻한 온기와 향기가 피어났으면 좋겠어. 당신이 권하고 밀어주어서 시작된 이 과정을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나의 영과 몸과 정신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아.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지극히 귀한 축제의 마당에서 나는 당신이 풀어놓은 사랑과 희생과 온기를 느낄거야. 당신을 정말 사랑해. 그리고 행복해, 당신과 함께라서.



   2009년 3월 14일 화이트 데이, 봄의 축제에 당신을 여왕으로 초대하며, 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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