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이름 꽃 / 김영교

2018.02.07 19:26

김영교 조회 수:1390

B 01.JPG이름 꽃 - 김영교


이름이란 무엇인가? 부르기 좋고 쓰기 좋고 기억하기 좋고 듣기에 좋은 호칭이 아닌가. 이름 붙이기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며 생명과 동일한 의미 부여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널려있는 모든 사물은 명명 받지 못하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대상이나 물체에 새삼스럽게 이름을 붙이고 싶다는 충동이나 의무감은 그것을 지금부터 사랑하면서 살아가겠다는 자기 확인이기도 하다.


눈만 뜨면 책만 읽어대는 오빠 언니를 위로 하고 나는 막내로 태어났다. 애교있는 여식아가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는 애교[교]자를 이름 끝에 달아 주었다. 어려서 부터 강아지를 좋아해서 함께 뒹굴며 자란 터에 애교와는 거리가 먼 애견가로 성장했다. 후천적 내 성격 중에 고등학교도 남녀 공학을 다녀 여성적 요소가 더욱 희박해 졌다. 이름을 지키면서 이런 나의 약점을 보완하기위해 여자대학으로의 진학은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이름에 맞게 정신 차려 애교스럽게 굴라 치면 꼭 남의 옷을 빌려 입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부터 나는 사람의 이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춘수시인의 꽃은 꽃이라 부르기 전에는 사물에 불과했으나 드디어 꽃이라 명명하고 이름을 불러 주였을 때 비로소 자기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손, 팔 다리 등 평생 자신에게 소속될 지체를 가지고 인간은 태어나지만 이름만은 예외이다. 이름을 이마에 써 붙이고 세상에 나온 사람은 마무도 없다. 주위의 사랑하는 손 윗분이 애정을 가지고 작명해 주기 때문이다. 본인의 의사는 전여 개입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이름은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되기 바라는 주위의 꿈이요, 소망인 것이다. 제한 돼 있는 삶의 테두리 안에서 오래 풍성하게 사는 방법은 이름에 걸맞게 많은 만남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쌓고 무리 지어 숲을 이루며 의미 있게 살아가는데 있다고 본다.


이름 때문에 고민한 친구가 있었다. 딸 여섯을 나은 다음 가문을 이를 아들을 원한 부모의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친구 이름은 끝연(년)이었다. 그 이름으로 친구는 많이 속상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훗날 쌍기역 발음을 못하는 미국친구가 <굿연>이라 부를 때 풀이가 그럴싸해서 이름 열등감은 없어졌다. <Good 연>, 바람 부는 날 파아란 하늘높이 솟아오르는 위풍 당당 좋은 연이라니... 연처럼 지금도 친구는 불어오는 환경의 바람을 타고 창공을 계속 오르고 있다.


내가 아는 치과의사 이 선생님 댁은 딸 셋을 두었는데 호감이 가는 이름이었다. 기다리던 중 태어난 맏딸은‘기쁨’, 둘째는 조산을 해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바랬기에 ‘희망’, 섭섭이 셋째 딸이 주위사람에게 사랑을 받도록 지은 ‘사랑’ 이었다. 부모님의 사려 깊은 마음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주위에 멋있는 이름들 중에 이런 이름들이 생각난다. 약사이며 시인이신 ‘강언덕’ 씨, ‘용기’ 와 ‘슬기’의 이름을 가진 남매를 둔 시인친구도 있고, 또 ‘대한’과 ‘민국’그리고‘ 필승’이란 두 살 터울의 세 아들을 둔 조카 목사네가 있다. 친지 중에 (Feeling Good)이란 회사를 가진 백 사장댁은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호랑이 띠의 아들은‘두산’, ‘용띠’의 딸은 ‘녹담’이다. 북으로 백두산, 남으로는 백녹담, 통일이 되면 좁다하고 오고 갈 이름들이 아닌가.


뭐니 뭐니 해도 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이름 하나 알고 있다. ‘Jesus Christ’다. ‘Jesus’란 역사적 의미의 고유명이다. ‘Savior’(구원자)로 인성을 상징한다. ‘Christ’란 기름 부움을 받은 자, ‘Messiah’로 신성을 동시에 지닌, 이 이름이야 말로 제일 큰 이름으로 시시각각 나를 압도한다.

이름하면 생각나는 특이한 인연이 있다. 점 한 둘의 관계다. 대학후배 중에 대훈이가 있다. 그 녀의 남편이름은 김영규다. 나의 고등학교 선배시다. 김영규와 김대훈 부부의 이름이 김태훈과 김영교 우리부부의 이름과 이토록 비슷할 수가 있을까. 우연이지만 이런 이름 인연 때문에 어디서 만나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게 된다. 세상에는 학연, 지연, 혈연등 잎맥처럼 많은 인연들이 있다. 이름으로 맺어진 인연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명연(名緣)이라 할까.


좋아 하는 사람끼리 서로 부르는 은밀한 이름이 있듯이 대상에게 이름을 지여주고 그것을 비로소 자기 관계에 투입시켜 자기 것으로 존재시키는 일은 살아가는 큰 즐거움으로 삼을 일이다. 나는 오늘도 내 삶에 멋있는 이름과 만나는 꿈을 꾼다.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이름을 기대하며 따뜻한 가슴을 키워 간다.


이름이 가는 곳에 인연의 꽃은 핀다. 향기 좋은 꽃이 핀다. 꽃을 보고 반응을 한다. 교감이다. 소통과정이 이름 안테나를 통해 교신이 오간다. 이름이 발을 달고 행동할 때 독창도 살아나고 합창은 더 살아난다. 곁눈질로 부를 때는 신호일 뿐... 이름 호명은 닫혀있던 책을 여는 것이다. 반응은 대상과 대화 표정을 통해 그 도서관에 입문하여 내용을 열람, 읽는 소통 과정이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과연 나는 남길만한 이름 꽃을 피웠나 돌아보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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