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폭의 행복 1

2012.09.27 08:21

김영교 조회 수:113 추천:4

사진 한 폭의 행복 / 김영교

그 날 성진일사진작가가 선물로 준 커다란 액자의 사진 한 폭이 내 마음을 이토록 행복하게 해줄줄은 예상 밖이었다.들뜬 마음으로 자동차 뒤 좌석에 싣고 집으로 운반해 오면서 내내 가슴이 설레었다. 조심스레 옮겨 훼밀리룸 벽난로 위 넓은 벽에 걸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눈길을 가져가는 지점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온 나의 빈 벽이었다.

멕시코 선교지에 갔을 때 찍은 농촌 풍경, 지고의 평화스러움과 아름다움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파아란 하늘 보자기에 하얀 뭉게구름 몇 덩어리씩 무리지어 담겨져 있다. 그 아래 일렬로 선 미류 나무의 초록 이파리들은 눈부시게 윤기가 흐르고 있다. 나무둥치 밑으로 넓게 펼쳐진 들판, 거기엔 누런 들풀들이 낮게 엎드려 한 방향으로 바람에 기대고 있다. 나름대로 제 각기 적당히 떨어져 서로 사랑의 시선을 나누는 상생의 간격으로 서있는 나무들이 무척 우호적으로 보인다. 사진은 그 들판의 나무그늘로 나를 데리고 들어간다. 어느 틈에 나도 모르게 나는 목가적 풍경에 흡수 된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든 극치의 조화와 균형은 풍경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다. 몸을 낮추니 세상에 아름답지 않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진작가의 겸손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자연이 재발견되고 발췌되고 축소되어가는 사진예술, 그리고 축소된 자연은 또다시 확대된다. 그 아름다움을 무한대로 펼쳐 보이기도 한다.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보는 시선들을 감동으로 채워 생명을 전이시키는 것이었다. 비우면서 가득 채우는 작업, 그래서 사진사와 사진작가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여겨졌다.


시선을 뗄 수 없이 깊이 빨려 들어가 나는 없어지고 그 풍경 속에 앉아 있는 내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원상에의 회복, 그 의미를 증폭시키는 그 힘은 사진작가의 몫이었다. 소용돌이치는 그 감격과 기쁨은 생명을 물오르게 하는 감사함이 근저를 이룬다. 풍경의 한 부분이 된 나, 정작 가득 차오름을 체험한 기억은 참으로 의미있는 데라피 효과로 남아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문득 걱정을 내려놓고 누군가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여 방황하던 젊은 날의 들판이 떠올랐다. 내 안의 상처들을 말끔히 아물도록 어루만져 주는 저 산들 바람! 고뇌의 들판은 사라지고 사막을 건너 온 물기 머금은 바람 앞에 나는 자꾸 작아지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온전한 의탁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입맛이 서서히 돌아오고 아픔이 줄어들면서 손바닥에 와서 고이는 힘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내 골수 깊이 자생력 디엔에이가 살아나 세포와 교신하면서 함생으로 달려가는 매카니즘 체험, 참으로 경이롭게 느껴졌던 일이 어제만 같다.

오늘도 외출에서 돌아오는 나의 시선을 맨 먼저 가져가는 저 사진 한 폭, 어깨에 고인 팽팽한 긴장, 바짓가랭이에 달라붙은 피곤을 털어주려고 주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 막힘이 툭 트이며 물 흐르는 소리마져 들린다. 어릴 적 고향이 가슴에 와 안긴다. 가족과 함께한 따끈한 둥근 밥상이 겹치며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간에 젖어든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6 Boonie 고 시인 김영교 2012.02.11 133
175 시인 김영교의 문학적 근황 김영교 2012.02.11 134
174 복 많이 누리세요/김영교 김영교 2012.12.30 139
173 길의 노래 / 9-15-2010 김영교 2010.09.14 140
172 박경리편 김영교 2008.05.23 142
171 예운 (1953년) 김영교 2012.09.22 142
170 양로병원 우울 전염병 김영교 2011.09.13 144
169 신호등 / 김영교 김영교 2012.10.14 152
168 겨울바다의 빈 조개껍질 김영교 2010.12.09 154
167 김영교의 <감사의 겉옷을 입고> by 이문구 김영교 2011.02.17 156
166 책이 행진할 때 김영교 2011.01.04 157
165 그 해의 가을비 3 김영교 2012.09.30 159
164 강추의 도서 하나 흔들며 김영교 2007.04.24 160
163 詩人 백석(白石)과 통영(統營) 면 백석은 남쪽의 끝자락 통영과의 인연이 뜻밖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 그가 즐겨 쓴 시편들은 대개가 북쪽의 지역 사투리를 사용하며 진한 토속성을 담고 있기에 '통영'이 비집고 들어 서기로는 생경 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운명적인 통영과의 만남이 실제로 명정골의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 1275EA4C4E5C0E4123CBC9 이화여고생 통영의 박경련 백석의 첫사랑 <통영의 란, 박경련> 이루지 못한 사랑은 김영교 2017.08.07 160
162 The Flight by Sara Teasdale 김영교 2007.03.19 163
161 길 동무들 / 정혜신 김영교 2010.10.26 164
160 이화여대 Reunion at Los Angeles 김영교 2010.08.31 167
159 박제천의 시창작 실기 /8/24/07 김영교 2007.08.29 174
158 이화문학상 당선소감 김영교 2007.02.07 175
157 The Road Not Taken - Robert Frost 김영교 2011.07.28 177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4
어제:
4
전체:
648,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