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장

2011.08.15 03:32

한길수 조회 수:537 추천:108

느닷없이 몰아닥친 열대야 때문인지 작동하지 않는 투명한 유리창 보며 침묵 끝에 열기 보태는 한숨마다 시동 다시 걸고 눌러도 소용없다 허둥대니 땀 흐르는 곳마다 길이고 즐비한 재생부품 간판은 점집 같다 바람 빠져 풀썩 주저앉은 몸으로 살아서 만나지 못했던 인연이라고 죽어서 서로 몸 비비며 부둥켜안고 앙상하게 드러난 뼈 사이로 끝없이 내달았던 추억을 바람에 말리며 오랫동안 누군가 찾아주기 바랬을까 마당에 겹겹이 투명한 무덤 만들고 사라진 공룡의 문형으로 환생했다가 전장 누비던 용사의 말(馬) 화석이거나 형체도 알 수 없이 납작해진 몰골로 세대를 넘나들며 돌고 돌아다닌 몸 장기(臟器)를 만지는 손길이 분주하다 한 때는 동여맨 타이어 다 닿도록 부양가족 위해 몸 사리지 않고 연골 다 닳도록 길이라면 어디든 세상 향해 거침없이 달렸으나 지금은 손가락 사이로 밭은기침 막아내며 휘발유 냄새 베인 해부실에 누워있다 장기 든 한 사내와 수인사를 나누고 불과 몇 분이 무심히 지났을 뿐인데 장갑 벗겨지며 끝난 이식 수술 뒤 저승사자 같은 사무실벽 압축기가 유체 이탈하고 육신만 남은 차의 흔적 지우려 바람 속에 밀어 넣는다 지게차에 옮겨지는 차가운 생명은 내 모르는 수많은 죽음의 하나였을지 날 더운 건 뜨거운 영혼이 쉼 없이 온힘 다해 앞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훗날 나도 장기 하나쯤 지상에 놔두고 너처럼 투명하게 층층으로 쌓이고 싶다 2011년 <미주문학>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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