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바람의 거처
2012.01.18 10:15
가게 문창살 닫고 열쇠를 꽂자
어둠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등 뒤에 서있는 실바람의 거처는
병풍 두른 산 너머 바다일 것이다
종일 산을 넘어와 저무는 하루가
아내의 눈꺼풀에 내려앉아있다
지나간 하루의 과거가 적혀있는
금전등록기 내력이 뫼비우스 띠 같다
점점 작아져 굽어진 아내 등에서
미역줄기 파릇한 땀 냄새가 났다
매일 열 한 시간씩 가게를 지키는
빼곡한 장부로 집 한 채 짓고 싶다
썰물 때는 속살 드러내던 오래전
바다와 육지가 맞닿는 딱 그 자리에
아내는 바다를 품은 바위였으리라
고대 바다생물의 유전자를 닮은
몇 백 년 흘러도 바다와 같은 집
창문 열면 실바람 불어와 눈감고
별똥별 떨어질 때 가슴에 담아두고
둥근 뜨개실 풀어가며 행복을 엮는
아늑한 집 한 채 내안에 품어본다
푸른 바다 가득한 실바람의 거처처럼
*<미주문학> 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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