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바람의 거처
2012.01.18 10:15
가게 문창살 닫고 열쇠를 꽂자
어둠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등 뒤에 서있는 실바람의 거처는
병풍 두른 산 너머 바다일 것이다
종일 산을 넘어와 저무는 하루가
아내의 눈꺼풀에 내려앉아있다
지나간 하루의 과거가 적혀있는
금전등록기 내력이 뫼비우스 띠 같다
점점 작아져 굽어진 아내 등에서
미역줄기 파릇한 땀 냄새가 났다
매일 열 한 시간씩 가게를 지키는
빼곡한 장부로 집 한 채 짓고 싶다
썰물 때는 속살 드러내던 오래전
바다와 육지가 맞닿는 딱 그 자리에
아내는 바다를 품은 바위였으리라
고대 바다생물의 유전자를 닮은
몇 백 년 흘러도 바다와 같은 집
창문 열면 실바람 불어와 눈감고
별똥별 떨어질 때 가슴에 담아두고
둥근 뜨개실 풀어가며 행복을 엮는
아늑한 집 한 채 내안에 품어본다
푸른 바다 가득한 실바람의 거처처럼
*<미주문학> 2011년 겨울호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130 | 불러본다 | 한길수 | 2014.05.20 | 288 |
| 129 | 억새풀 | 한길수 | 2014.05.20 | 473 |
| 128 | 퍼블비치에서 | 한길수 | 2014.05.20 | 491 |
| 127 | 빈집 | 한길수 | 2014.05.20 | 235 |
| 126 | 500자 시론 - 내 시를 말한다’ | 한길수 | 2014.05.20 | 269 |
| 125 | 오래된 집 | 한길수 | 2014.05.20 | 549 |
| 124 | 잃어버린 시간 | 한길수 | 2014.05.20 | 462 |
| 123 | 물밥 | 한길수 | 2012.10.20 | 561 |
| 122 | 경적의 얼굴 | 한길수 | 2012.10.20 | 463 |
| 121 | 알로에베라 | 한길수 | 2012.10.20 | 620 |
| 120 | 동궐도(東闕圖)* | 한길수 | 2012.05.05 | 598 |
| » | 실바람의 거처 | 한길수 | 2012.01.18 | 730 |
| 118 | 각시투구무늬 | 한길수 | 2011.12.21 | 567 |
| 117 | 폐차장 | 한길수 | 2011.08.15 | 563 |
| 116 | 새들의 신혼(新婚) | 한길수 | 2011.06.03 | 555 |
| 115 | 봄꽃 | 한길수 | 2011.05.09 | 580 |
| 114 | 눈물 마르질 않는 것은 | 한길수 | 2011.03.07 | 571 |
| 113 | 하산(下山) | 한길수 | 2011.02.10 | 665 |
| 112 | 아내의 집 | 한길수 | 2011.01.06 | 686 |
| 111 | 꿈꾸는 재앙 | 한길수 | 2011.01.06 | 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