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풀
2014.05.20 07:33
억새풀
풀숲 헤집고 떼 지어
사람의 세상을 보려고
힘겹게 발끝까지 들어 올린다
얼마를 살아야 잘 보이는지
짐작 못한 억새풀은
자신이 한갓 풀인지 모르고
눈앞보다 멀리 조금 더 멀리
흔들리는 지평선까지 내다본다
지평선 넘어 고국에 사는
억새풀은 그냥 봄이 아니라
영하의 겨울을 웅크리고
쉬지 않고 내리던 여름장마
온몸으로 맞으며 힘겨운 생을
억세게 이겨낸 풀은 스스로를
억새풀이라며 손 흔들고 있다
체념의 민얼굴에 수염 날리고
빠듯한 살림으로 쌓는 연금
바닥에 뿌리 드러내듯 긴 한숨
지저귀는 새떼가 희망 깨워도
새벽 물기마저 아침 햇살에게
내주고 흔들거리는 이민자들
억새풀은 기다림부터 배워간다
수명 다 한 척 앙상한 억새풀은
여름 가고 가을이 저 앞
이제야 뭔가 보일 것도 같다
고국이든 이국 먼 타국이든
살아남는 게 전부인 건 아닐지
어제도 보이지 않았던 기대를
오늘도 속으며 두리번거린다
-2014년 <문학마당>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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