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풀

2014.05.20 07:33

한길수 조회 수:443 추천:26

억새풀 풀숲 헤집고 떼 지어 사람의 세상을 보려고 힘겹게 발끝까지 들어 올린다 얼마를 살아야 잘 보이는지 짐작 못한 억새풀은 자신이 한갓 풀인지 모르고 눈앞보다 멀리 조금 더 멀리 흔들리는 지평선까지 내다본다 지평선 넘어 고국에 사는 억새풀은 그냥 봄이 아니라 영하의 겨울을 웅크리고 쉬지 않고 내리던 여름장마 온몸으로 맞으며 힘겨운 생을 억세게 이겨낸 풀은 스스로를 억새풀이라며 손 흔들고 있다 체념의 민얼굴에 수염 날리고 빠듯한 살림으로 쌓는 연금 바닥에 뿌리 드러내듯 긴 한숨 지저귀는 새떼가 희망 깨워도 새벽 물기마저 아침 햇살에게 내주고 흔들거리는 이민자들 억새풀은 기다림부터 배워간다 수명 다 한 척 앙상한 억새풀은 여름 가고 가을이 저 앞 이제야 뭔가 보일 것도 같다 고국이든 이국 먼 타국이든 살아남는 게 전부인 건 아닐지 어제도 보이지 않았던 기대를 오늘도 속으며 두리번거린다 -2014년 <문학마당>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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