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풀
2014.05.20 07:33
억새풀
풀숲 헤집고 떼 지어
사람의 세상을 보려고
힘겹게 발끝까지 들어 올린다
얼마를 살아야 잘 보이는지
짐작 못한 억새풀은
자신이 한갓 풀인지 모르고
눈앞보다 멀리 조금 더 멀리
흔들리는 지평선까지 내다본다
지평선 넘어 고국에 사는
억새풀은 그냥 봄이 아니라
영하의 겨울을 웅크리고
쉬지 않고 내리던 여름장마
온몸으로 맞으며 힘겨운 생을
억세게 이겨낸 풀은 스스로를
억새풀이라며 손 흔들고 있다
체념의 민얼굴에 수염 날리고
빠듯한 살림으로 쌓는 연금
바닥에 뿌리 드러내듯 긴 한숨
지저귀는 새떼가 희망 깨워도
새벽 물기마저 아침 햇살에게
내주고 흔들거리는 이민자들
억새풀은 기다림부터 배워간다
수명 다 한 척 앙상한 억새풀은
여름 가고 가을이 저 앞
이제야 뭔가 보일 것도 같다
고국이든 이국 먼 타국이든
살아남는 게 전부인 건 아닐지
어제도 보이지 않았던 기대를
오늘도 속으며 두리번거린다
-2014년 <문학마당> 여름호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30 | 불러본다 | 한길수 | 2014.05.20 | 257 |
» | 억새풀 | 한길수 | 2014.05.20 | 442 |
128 | 퍼블비치에서 | 한길수 | 2014.05.20 | 465 |
127 | 빈집 | 한길수 | 2014.05.20 | 207 |
126 | 500자 시론 - 내 시를 말한다’ | 한길수 | 2014.05.20 | 241 |
125 | 오래된 집 | 한길수 | 2014.05.20 | 522 |
124 | 잃어버린 시간 | 한길수 | 2014.05.20 | 429 |
123 | 물밥 | 한길수 | 2012.10.20 | 531 |
122 | 경적의 얼굴 | 한길수 | 2012.10.20 | 433 |
121 | 알로에베라 | 한길수 | 2012.10.20 | 599 |
120 | 동궐도(東闕圖)* | 한길수 | 2012.05.05 | 573 |
119 | 실바람의 거처 | 한길수 | 2012.01.18 | 697 |
118 | 각시투구무늬 | 한길수 | 2011.12.21 | 536 |
117 | 폐차장 | 한길수 | 2011.08.15 | 540 |
116 | 새들의 신혼(新婚) | 한길수 | 2011.06.03 | 533 |
115 | 봄꽃 | 한길수 | 2011.05.09 | 557 |
114 | 눈물 마르질 않는 것은 | 한길수 | 2011.03.07 | 546 |
113 | 하산(下山) | 한길수 | 2011.02.10 | 640 |
112 | 아내의 집 | 한길수 | 2011.01.06 | 660 |
111 | 꿈꾸는 재앙 | 한길수 | 2011.01.06 | 5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