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적의 얼굴

2012.10.20 11:21

한길수 조회 수:430 추천:64

기차 지나며 가르는 새벽 경적 동네 개들은 열차꼬리를 물려는 듯 유난히 우우거리고 고요 속으로 빠져든 잠은 허둥지둥 아침 세수하고 거울 앞에 선 얼굴은 초췌한 중년의 모습이다 건널목 앞 길게 늘어진 차 아침 거울 속 사내 얼굴들이 영문 모르고 고개 내민다 매일 외줄 타듯 곡예로 살아가는 긴장의 연속에 숨겨둔 외로움 누군가 붙잡고 하소연할 수 없는 빈속 취기 같은 갈증만 더할 뿐 허기진 얼굴로 길 건너고 있다 몰려든 사람들 사이로 선로에 떨어진 구두가 보인다 무성한 추측들로 둘러쳐진 노란 줄이 펄럭이고 있다 실패의 후회보다 더한 고통으로 질근 눈을 감고 목숨 던졌을 한 사내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경적은 철로 따라 몸 굴리며 사는 동안 참았을 아픔들을 사내가 허겁지겁 내려놓자 주인 잃은 구두를 보며 바람에 들썩이는 밑창 같은 지상의 꿈이 사라진 육신 후회 없이 살자던 어제가 명치끝을 누르듯 묵직해진다 2012년 <미주문학> 가을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0 불러본다 한길수 2014.05.20 241
129 억새풀 한길수 2014.05.20 437
128 퍼블비치에서 한길수 2014.05.20 462
127 빈집 한길수 2014.05.20 202
126 500자 시론 - 내 시를 말한다’ 한길수 2014.05.20 236
125 오래된 집 한길수 2014.05.20 512
124 잃어버린 시간 한길수 2014.05.20 425
123 물밥 한길수 2012.10.20 526
» 경적의 얼굴 한길수 2012.10.20 430
121 알로에베라 한길수 2012.10.20 594
120 동궐도(東闕圖)* 한길수 2012.05.05 566
119 실바람의 거처 한길수 2012.01.18 690
118 각시투구무늬 한길수 2011.12.21 527
117 폐차장 한길수 2011.08.15 537
116 새들의 신혼(新婚) 한길수 2011.06.03 526
115 봄꽃 한길수 2011.05.09 550
114 눈물 마르질 않는 것은 한길수 2011.03.07 544
113 하산(下山) 한길수 2011.02.10 637
112 아내의 집 한길수 2011.01.06 656
111 꿈꾸는 재앙 한길수 2011.01.06 589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
어제:
0
전체:
93,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