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적의 얼굴

2012.10.20 11:21

한길수 조회 수:438 추천:64

기차 지나며 가르는 새벽 경적 동네 개들은 열차꼬리를 물려는 듯 유난히 우우거리고 고요 속으로 빠져든 잠은 허둥지둥 아침 세수하고 거울 앞에 선 얼굴은 초췌한 중년의 모습이다 건널목 앞 길게 늘어진 차 아침 거울 속 사내 얼굴들이 영문 모르고 고개 내민다 매일 외줄 타듯 곡예로 살아가는 긴장의 연속에 숨겨둔 외로움 누군가 붙잡고 하소연할 수 없는 빈속 취기 같은 갈증만 더할 뿐 허기진 얼굴로 길 건너고 있다 몰려든 사람들 사이로 선로에 떨어진 구두가 보인다 무성한 추측들로 둘러쳐진 노란 줄이 펄럭이고 있다 실패의 후회보다 더한 고통으로 질근 눈을 감고 목숨 던졌을 한 사내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경적은 철로 따라 몸 굴리며 사는 동안 참았을 아픔들을 사내가 허겁지겁 내려놓자 주인 잃은 구두를 보며 바람에 들썩이는 밑창 같은 지상의 꿈이 사라진 육신 후회 없이 살자던 어제가 명치끝을 누르듯 묵직해진다 2012년 <미주문학>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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