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적의 얼굴
2012.10.20 11:21
기차 지나며 가르는 새벽 경적
동네 개들은 열차꼬리를
물려는 듯 유난히 우우거리고
고요 속으로 빠져든 잠은
허둥지둥 아침 세수하고
거울 앞에 선 얼굴은
초췌한 중년의 모습이다
건널목 앞 길게 늘어진 차
아침 거울 속 사내 얼굴들이
영문 모르고 고개 내민다 매일
외줄 타듯 곡예로 살아가는
긴장의 연속에 숨겨둔 외로움
누군가 붙잡고 하소연할 수 없는
빈속 취기 같은 갈증만 더할 뿐
허기진 얼굴로 길 건너고 있다
몰려든 사람들 사이로
선로에 떨어진 구두가 보인다
무성한 추측들로 둘러쳐진
노란 줄이 펄럭이고 있다
실패의 후회보다 더한 고통으로
질근 눈을 감고 목숨 던졌을
한 사내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경적은 철로 따라 몸 굴리며
사는 동안 참았을 아픔들을
사내가 허겁지겁 내려놓자
주인 잃은 구두를 보며
바람에 들썩이는 밑창 같은
지상의 꿈이 사라진 육신
후회 없이 살자던 어제가
명치끝을 누르듯 묵직해진다
2012년 <미주문학> 가을호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30 | 불러본다 | 한길수 | 2014.05.20 | 268 |
129 | 억새풀 | 한길수 | 2014.05.20 | 450 |
128 | 퍼블비치에서 | 한길수 | 2014.05.20 | 475 |
127 | 빈집 | 한길수 | 2014.05.20 | 217 |
126 | 500자 시론 - 내 시를 말한다’ | 한길수 | 2014.05.20 | 251 |
125 | 오래된 집 | 한길수 | 2014.05.20 | 531 |
124 | 잃어버린 시간 | 한길수 | 2014.05.20 | 440 |
123 | 물밥 | 한길수 | 2012.10.20 | 539 |
» | 경적의 얼굴 | 한길수 | 2012.10.20 | 438 |
121 | 알로에베라 | 한길수 | 2012.10.20 | 605 |
120 | 동궐도(東闕圖)* | 한길수 | 2012.05.05 | 580 |
119 | 실바람의 거처 | 한길수 | 2012.01.18 | 703 |
118 | 각시투구무늬 | 한길수 | 2011.12.21 | 542 |
117 | 폐차장 | 한길수 | 2011.08.15 | 546 |
116 | 새들의 신혼(新婚) | 한길수 | 2011.06.03 | 536 |
115 | 봄꽃 | 한길수 | 2011.05.09 | 563 |
114 | 눈물 마르질 않는 것은 | 한길수 | 2011.03.07 | 553 |
113 | 하산(下山) | 한길수 | 2011.02.10 | 645 |
112 | 아내의 집 | 한길수 | 2011.01.06 | 664 |
111 | 꿈꾸는 재앙 | 한길수 | 2011.01.06 | 6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