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2011.05.09 06:50
가로등 누렇게 바랜 유리 안에
해 저문 저녁 끈을 잡고
길 눈 어두운 벌레처럼 더듬거리며
줄 선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
야채샐러드 안에 검은 살점들
둥근 올리브에 비친 우주 보며
따뜻했던 올리브 나무숲을 기억했다
그칠 줄 모르고 겨울비 내리던 날
한발자국 떼지 못하고 서서
퉁퉁 불어난 나이테 몸에 두르고
늑골에서 빠져나온 사리 열매들
다 떨고 속없이 묵언 수행하는
하늘 이고 있는 올리브 가지들
오늘 저녁도 네 곁을 스쳐간다
나무숲이 점점 다가오자 눈꽃은
눈꽃이 아니라 봄꽃, 봄꽃이었다
봄꽃은 밤새 누구의 입김으로
가지마다 꽃들을 저리 걸어두었을까
가지에 엮어놓은 바람의 그네 타고
올리브 가지 사이 휘돌아 온 새벽
삼월의 흰 꽃 갈아입고 기지개 켜는
눅눅해진 어깨 내려놓고 더러는
풀 위에 펼쳐놓은 안식의 상이라니
나무숲 끝닿고 떨어지는 울림
트랙터 지나간 바퀴 자국 따라
내려앉은 어린 속살 꽃잎들이
아직 녹지 않은 먼 뒷산 눈꽃
손 내밀어 물들이는 흰 꽃잎
풀어놓고 한 계절 옮겨가는
흔적마다 새순처럼 올리브 향이
내 몸 안에 봄꽃으로 피어난다
2011년 <시와 경계> 봄호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30 | 불러본다 | 한길수 | 2014.05.20 | 268 |
129 | 억새풀 | 한길수 | 2014.05.20 | 449 |
128 | 퍼블비치에서 | 한길수 | 2014.05.20 | 475 |
127 | 빈집 | 한길수 | 2014.05.20 | 217 |
126 | 500자 시론 - 내 시를 말한다’ | 한길수 | 2014.05.20 | 251 |
125 | 오래된 집 | 한길수 | 2014.05.20 | 531 |
124 | 잃어버린 시간 | 한길수 | 2014.05.20 | 439 |
123 | 물밥 | 한길수 | 2012.10.20 | 539 |
122 | 경적의 얼굴 | 한길수 | 2012.10.20 | 438 |
121 | 알로에베라 | 한길수 | 2012.10.20 | 605 |
120 | 동궐도(東闕圖)* | 한길수 | 2012.05.05 | 580 |
119 | 실바람의 거처 | 한길수 | 2012.01.18 | 703 |
118 | 각시투구무늬 | 한길수 | 2011.12.21 | 542 |
117 | 폐차장 | 한길수 | 2011.08.15 | 546 |
116 | 새들의 신혼(新婚) | 한길수 | 2011.06.03 | 536 |
» | 봄꽃 | 한길수 | 2011.05.09 | 563 |
114 | 눈물 마르질 않는 것은 | 한길수 | 2011.03.07 | 553 |
113 | 하산(下山) | 한길수 | 2011.02.10 | 644 |
112 | 아내의 집 | 한길수 | 2011.01.06 | 664 |
111 | 꿈꾸는 재앙 | 한길수 | 2011.01.06 | 6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