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2011.05.09 06:50

한길수 조회 수:580 추천:90

가로등 누렇게 바랜 유리 안에 해 저문 저녁 끈을 잡고 길 눈 어두운 벌레처럼 더듬거리며 줄 선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 야채샐러드 안에 검은 살점들 둥근 올리브에 비친 우주 보며 따뜻했던 올리브 나무숲을 기억했다 그칠 줄 모르고 겨울비 내리던 날 한발자국 떼지 못하고 서서 퉁퉁 불어난 나이테 몸에 두르고 늑골에서 빠져나온 사리 열매들 다 떨고 속없이 묵언 수행하는 하늘 이고 있는 올리브 가지들 오늘 저녁도 네 곁을 스쳐간다 나무숲이 점점 다가오자 눈꽃은 눈꽃이 아니라 봄꽃, 봄꽃이었다 봄꽃은 밤새 누구의 입김으로 가지마다 꽃들을 저리 걸어두었을까 가지에 엮어놓은 바람의 그네 타고 올리브 가지 사이 휘돌아 온 새벽 삼월의 흰 꽃 갈아입고 기지개 켜는 눅눅해진 어깨 내려놓고 더러는 풀 위에 펼쳐놓은 안식의 상이라니 나무숲 끝닿고 떨어지는 울림 트랙터 지나간 바퀴 자국 따라 내려앉은 어린 속살 꽃잎들이 아직 녹지 않은 먼 뒷산 눈꽃 손 내밀어 물들이는 흰 꽃잎 풀어놓고 한 계절 옮겨가는 흔적마다 새순처럼 올리브 향이 내 몸 안에 봄꽃으로 피어난다 2011년 <시와 경계> 봄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0 불러본다 한길수 2014.05.20 288
129 억새풀 한길수 2014.05.20 473
128 퍼블비치에서 한길수 2014.05.20 491
127 빈집 한길수 2014.05.20 235
126 500자 시론 - 내 시를 말한다’ 한길수 2014.05.20 269
125 오래된 집 한길수 2014.05.20 549
124 잃어버린 시간 한길수 2014.05.20 462
123 물밥 한길수 2012.10.20 561
122 경적의 얼굴 한길수 2012.10.20 463
121 알로에베라 한길수 2012.10.20 620
120 동궐도(東闕圖)* 한길수 2012.05.05 598
119 실바람의 거처 한길수 2012.01.18 730
118 각시투구무늬 한길수 2011.12.21 567
117 폐차장 한길수 2011.08.15 563
116 새들의 신혼(新婚) 한길수 2011.06.03 555
» 봄꽃 한길수 2011.05.09 580
114 눈물 마르질 않는 것은 한길수 2011.03.07 571
113 하산(下山) 한길수 2011.02.10 665
112 아내의 집 한길수 2011.01.06 686
111 꿈꾸는 재앙 한길수 2011.01.06 623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4
어제:
3
전체:
119,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