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

2014.05.20 07:14

한길수 조회 수:430 추천:22

잃어버린 시간 -박한율을 보며 화사했던 여름 날 싱싱했던 땅 그림자를 따라 편 갈라 놀던 평범한 12살 한 아이가 슬쩍 청바지를 걷어 올리자 화폭에 이제 막 그려놓은 수채화처럼 가냘픈 무채색이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고 하루가 다르게 자랄 거라며 무심코 지나는 시간만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고 있다 어느 날 다리가 아프다는 소리를 하며 다리를 약간씩 절기도 했지만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해맑고 예쁜 아이의 이름은 박한율 한율이는 다리에 외상이 없으니 근육통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병원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다 의례적으로 치르던 엑스레이가 풀벌레 울듯 윙윙거렸다 검사를 마친 의사의 얼굴은 굳어졌고 소아암이라는 병명을 이야기할 때 한율 아버지는 천정에 나비가 힘겹게 날개 짓하며 돌아다녔다 열심히 앞만 보고 살면 행복은 자연스러운 훈장일 줄 알았던 날들이 감자기 나타난 블랙홀로 무너져 절망이 한 순간인 걸 깨달았다 출퇴근길이 낯설어지던 시간, 회사와 집에서 병원에 매일 가봐야 했고 한율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이 항암치료와 종양수술을 받던 한율이의 통증보다 더 커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무겁기만 한 얼굴을 들 수가 없고 어깨를 들썩였다 멈춰버린 시간 앞에 깊은 한숨뿐이었다 평소 무심코 지나쳤을 병원, 병원의 방마다 슬픔이 수혈 팩에 담겨 흘러내리고 가슴 먹먹한 아픔의 시간들로 검붉게 뭉쳐있다는 걸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구멍 난 가슴에 부는 바람이 가을이 지나가기 전에 차가워 얼어 죽는 것만 같았다 어른도 힘들었을 약물치료와 수술을 이겨내고 다리에 철심을 박았다 통곡의 강에다 콘크리트 교량 다리 올리듯 아픔은 매순간 이어지고 있다 딸의 아픔을 볼 때마다 어머니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 강을 이루지만 한율이의 간절한 마음은 잃어버린 시간 속에 조금씩 힘주어 그 강을 건너고 있다 병실의 방마다 신음하는 절실한 마음들이 알알이 익어가 소망도 하늘을 감동시킨다 병실에서 중학교 교재를 가져다 공부하여 졸업하고 통원치료하며 고등학교도 다니며 잃었던 웃음을 찾았다 힘들고 어렵던 시간이 터널을 지나 해맑게 웃고 있다 간절한 사랑이 시간과 따뜻하게 동행하여 한율이의 하늘은 여전히 싱그러울 것이다 지나간 시간의 의미보다 포기하지 않고 매순간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 희망은 멀지 않다 -2014년 <한국신춘문예>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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