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신혼(新婚)
2011.06.03 04:50
차고 위 통나무 기둥 틈새에
바람 막으로 부지런히 잡풀 나르던
사전에서 찾은 새롭다는 뜻도
새들이 세 들어 사는지도 몰랐다
아늑할 것 같은 둥근 새집에는
틀림없이 신혼으로 깨가 쏟아지겠지
식탁에 앉아 클래식과 팝송을 바꿔가며
향기 그윽한 커피 마시며 소곤거리고
냉장고와 세탁기도 들여놓고
32인치 새 티브이로 부부싸움하고
42인치로 바꿔다 놓았는지도 모르는 일
살림 늘어 갈수록 집도 낡아가겠지만
하루 종일 포도밭 고랑 헤매다
해질녘이면 찬거리 물고 돌아오는
밤바람 막아주는 따뜻한 집에서
새알 같이 추워진 계절 품다보면
불현듯 봄은 알에서 잠깨어 나오고
그 때쯤이면 햇살도 넉넉하게 따뜻하리라
새끼에게 밥풀 물어주는 사랑도 알고
학교 종소리 들으며 우는 법도 배우겠지
날이 갈수록 집주인 눈치도 보겠지만
성 바꾸고 한 가족 되어 사는 일이
신혼이라고 말하듯 몸치며 나르는 새들
세상도 살만한 곳 있다고 흐뭇하리라
웃으며 내려앉는 하늘 바라보며
오래도록 신혼 생각하며 살면 좋겠다
*2011년 <미주문학> 봄호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30 | 불러본다 | 한길수 | 2014.05.20 | 268 |
129 | 억새풀 | 한길수 | 2014.05.20 | 450 |
128 | 퍼블비치에서 | 한길수 | 2014.05.20 | 475 |
127 | 빈집 | 한길수 | 2014.05.20 | 217 |
126 | 500자 시론 - 내 시를 말한다’ | 한길수 | 2014.05.20 | 251 |
125 | 오래된 집 | 한길수 | 2014.05.20 | 531 |
124 | 잃어버린 시간 | 한길수 | 2014.05.20 | 440 |
123 | 물밥 | 한길수 | 2012.10.20 | 539 |
122 | 경적의 얼굴 | 한길수 | 2012.10.20 | 438 |
121 | 알로에베라 | 한길수 | 2012.10.20 | 605 |
120 | 동궐도(東闕圖)* | 한길수 | 2012.05.05 | 580 |
119 | 실바람의 거처 | 한길수 | 2012.01.18 | 703 |
118 | 각시투구무늬 | 한길수 | 2011.12.21 | 542 |
117 | 폐차장 | 한길수 | 2011.08.15 | 546 |
» | 새들의 신혼(新婚) | 한길수 | 2011.06.03 | 536 |
115 | 봄꽃 | 한길수 | 2011.05.09 | 563 |
114 | 눈물 마르질 않는 것은 | 한길수 | 2011.03.07 | 553 |
113 | 하산(下山) | 한길수 | 2011.02.10 | 644 |
112 | 아내의 집 | 한길수 | 2011.01.06 | 664 |
111 | 꿈꾸는 재앙 | 한길수 | 2011.01.06 | 6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