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밥

2012.10.20 11:23

한길수 조회 수:561 추천:71

어릴 때는 몰랐었다 어머니는 반찬도 많은데 국그릇에 물 부어 물밥을 후루룩 마시듯 드셨는지 빈 그릇 내려놓고 천장 보며 한숨 쉬는 의미가 뭐였는지 고국을 떠나온 이민자에게 매일 열한시간 일하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마는 날은 더워 땀 흘리며 흥정하다 흐트러트리고 간 옷가지와 손님 뒷모습 보며 불쑥 고개 내미는 스트레스에게 말아 논 물밥을 떠올린다 저녁에 뭘 먹을지 고민될 때 남은 밥에 시원한 물 넣고 총각무 한 조각 깨물면 편한 어머니 얼굴 떠오르며 가슴에 사무친 그리움으로 감칠맛 나는 한 끼가 되었다 어릴 때는 몰랐었다 저녁을 물리신 아버지는 물밥이 소화되기 전에 드러누워 코를 고셨는지 잠속에서 혹 눈물 같은 걸 강으로 쏟아내지 않았을까 기름진 음식이 즐비한 식단 허기를 느낄 새 없는 요즘 수저에 간장 찍어 먹어도 가슴 먹먹한 삶의 눈물 같은 그리움 휘저어놓은 물밥은 아름다운 추억의 양식이었음을 지구를 몇 바퀴 돌았을지 모를 꽃향기 바람 같은 시간은 머리에 꽃으로도 피어나는데 말도 안 되는 영어는 엉키고 이국에서 만 물밥에 목메는 두 딸 둔 아버지가 된 지금 물밥은 그냥 물밥이 아니고 슬픔을 이겨내는 희망이다 * 2012년 미주문학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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