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下山)

2011.02.10 03:52

한길수 조회 수:665 추천:78

깃털 꽂고 춤추는 인디언 섬머로
들깨가 불판에 더위 볶는 동안
하루의 반을 집어삼킨 흑염소는
빅 베어 산등성이 배회하던
그리움을 연신 되새김질 하고 있다  

우거진 나무 숲 거닐고 싶던 꿈은
봉투에 담겨 운구차로 배달되고
비키니만 걸친 살굿빛 알몸에
칼질 웃음이 뼈 사이사이 닿는
분주한 손길로 살점들이 하산한다  

할머니 길 나선 걸음도 외롭더니
깜박이는 신호등 손사래에도
등 굽어져 주춤거리는 흑염소 걸음
자동차에 치여 신문 부고로 만나고
빼곡한 유족에 가슴만 퍽퍽해진다  

흑염소 집 벽에 박제된 눈으로
문턱 밟으며 연 월급 명세서
껍질 벗기듯 지폐 몇 장 따로 세어
개 꼬리 흔들며 일상 밖에 앉아
소주 들이키는 사내들의 저녁이다  

아이들 걷어 찬 풀 먹인 햇살은
웅성거리는 저녁 바람 속에서
철장 맞고 튕겨져 길 구르는데
서쪽 하늘 붉게 멍든 나뭇잎 끝으로
흑염소 울음이 검게 내려앉고 있다


        -2010년 미주문학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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