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적의 얼굴
2012.10.20 11:21
기차 지나며 가르는 새벽 경적
동네 개들은 열차꼬리를
물려는 듯 유난히 우우거리고
고요 속으로 빠져든 잠은
허둥지둥 아침 세수하고
거울 앞에 선 얼굴은
초췌한 중년의 모습이다
건널목 앞 길게 늘어진 차
아침 거울 속 사내 얼굴들이
영문 모르고 고개 내민다 매일
외줄 타듯 곡예로 살아가는
긴장의 연속에 숨겨둔 외로움
누군가 붙잡고 하소연할 수 없는
빈속 취기 같은 갈증만 더할 뿐
허기진 얼굴로 길 건너고 있다
몰려든 사람들 사이로
선로에 떨어진 구두가 보인다
무성한 추측들로 둘러쳐진
노란 줄이 펄럭이고 있다
실패의 후회보다 더한 고통으로
질근 눈을 감고 목숨 던졌을
한 사내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경적은 철로 따라 몸 굴리며
사는 동안 참았을 아픔들을
사내가 허겁지겁 내려놓자
주인 잃은 구두를 보며
바람에 들썩이는 밑창 같은
지상의 꿈이 사라진 육신
후회 없이 살자던 어제가
명치끝을 누르듯 묵직해진다
2012년 <미주문학>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