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거울 -김형술
2011.11.13 03:14
허물어져가는 빈 집 들창 곁 흙벽 위에 귀퉁이 깨어진 거울 하나 걸려있다 붉게 녹슬어가는 거울 속 기우뚱거리는 미류나무 지워지는 뭉게구름 일어서고 넘어지는 지평선...쪽으로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다 어깨를 누르는 누군가의 흰 손 와락 달려나오는 날카로운 빛 어지러워 얼굴을 찡그린 채 실눈을 뜨면 등 뒤를 달려가는 시간의 속도 한 생애가 놓친 찰나들 선명하게 만날 듯 하고 만난 듯 하다 두 팔을 벌려 시들어 내리는 여름꽃들 껴안고 빈집 가득 웅성거리는 어둠을 껴안으면 땀 젖은 손금 속 숨은 웃음소리 짧은 그림자를 찢고 일어서 귀를 파고드는 한낮의 정적 기꺼이 문 밖으로 걸어나와 바람벽에 걸린 채 흔들리기를 멈추지 않는 거울 속엔 수직으로 추락하는 새떼들 쫓아 늘 세상으로 달려나오는 흰 햇빛 줄기들 1992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의자와 이야기하는 남자』, 『나비의 침대』 『물고기가 온다』 『월요시』,『시.바.다-금요일의 시인들』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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