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장로의 간증멜(김영교권사편)

2007.10.20 10:07

김영교 조회 수:309 추천:36

선배님 글 보냅니다.‏ 보낸 사람: 이 상인(sanghoon7175@yahoo.co.kr) 모르는 사람이 보낸 메일입니다. 수신 허용 | 차단 보낸 날짜: 2007년 10월 19일 금요일 오후 11:56:08 받는 사람: kimyoungkyo@hotmail.com 보안 검사 제공: 공개헌금소감.hwp (26.9 KB) 우리교회 홈페이지 참조하세요 간증나눔방에 두번째 글립니다. lgcla.onmam.com으로 들어가시면 영광의 빛 교회가 나오고 첫자 간증 나눔방에 두번째 글입니다. 6월 8일, 나는 미주복음방송의 토렌스지역 공개헌금 자원봉사자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날 하루에 있었던 생생한 감동들이 아직도 나의 믿음생활에 커다랗게 남아 있기에 여러 성도님들과 그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공개헌금일이 있기 얼마전 자원봉사자로 수고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새로운 믿음의 형제자매님들과 만난다는 약간의 설레임과도 같은 기대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 날, 이곳 엘에이에 와서 처음으로 토렌스에 가게되어 전날 인터넷에서 프린트해 둔 지도를 갖고 아침 7시에 출발하여 토렌스 한남체인으로 갔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같은 자원봉사자인 김권사님을 만나 첫 인사를 나누었다. 김권사님은 엘에이 있는 모 대형교회의 권사님으로 헌신하시는 분이었다. 안내 프랑카드를 세운후 접수테이블을 정리하고 앉자마자 권사님은 대뜸 테이블위에 손바닥을 펴 놓고 "장로님, 기도해 주세요." 하면서 내 얼굴을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권사님의 손위에 내 오른손을 포개 얹고 오늘의 공개헌금이 하나님의 뜻으로 모든 헌금하시는 분들이 기쁜 마음 가운데 잘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권사님은 퍽 자상하시면서도 세상을 사시는 지혜가 넘치는 아름다운 분이었습니다. 서울의 명문 여고를 나와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셨고 한국과 미국의 한국문단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시인이요 수필가로, 오늘 100불 이상 헌금하는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자신이 쓰신 책을 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와 직접 저자 친필사인을 해서 배포하셨다. 나보다는 대학 2년선배님으로 1960년대에 이곳 미국으로 오신 이민원로 이셨다. 권사님은 하루종일 한남체인에 드나드시면서 시식용 음식들을 얻어와 나를 기쁘게 하셨다. 하루 해가 지루하지 않게 신앙에 관한 얘기며 미국에서의 생활 애환, 가족들에 관한 얘기등 많은 재미있는 시간들을 마련해 주셨다. 그러나 내가 권사님한테 받은 큰 감동은 다른데 있었다. 권사님은 이런 공개헌금행사의 자원봉사자로 이미 몇번 참여 하셨는데, 자원봉사자로 단순히 참여 하는게 아니라 성공적인 모금행사가 되도록 많은 기도와 실질적인 준비를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서,너달 전부터 공개헌금에 참여할 친지,동창,지인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그 대상자들을 개별적으로 또는 친목단체별로 만나 차 사주고 점심 사주면서 공개헌금 참여를 안내하고 권유해서 대부분으로부터 헌금참여 동의를 얻어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날 권사님은 아예 현금 (2천불)과 수표책을 갖고 나오셔서 토렌스 공개헌금장소에 못나오시는 분들을 대신하여 일일이 전화로 확인 하시면서 때로는 현금으로, 때로는 ?으로 대신 헌금하셨다. 나는 처음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하시는 권사님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여러번 했다. 특히 우리는 년말까지 장년 100명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고 전도한다고 하지만, 정말 이렇게 철저하게 하고 있는지 많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공개헌금에 참여 하시는 분들중에 일부러 헌금을 하려고 오신 분들도 많았고, 또 마켓에서 장보고 나오다가 지갑을 털어 헌금하는 분들도 많았다. 오후 두시쯤 40이 안되 보이는 여자집사님이 열살 남짓한 아들을 데리고 헌금하러 오셨다. 나는 일어서서 맞으며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다. 그 집사님은 밝은 모습으로 우리 애한테 헌금에 대하여 훈련하느라고 같이 왔다면서 집사님 100불, 그 아드님 100불 이렇게 헌금하셨다. 그러시면서 헌금은 어려서 부터 당연히 해야 하도록 훈련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직접 방문하여 성의ƒ?하는게 중요하다며 아이의 손을 꼬옥 잡고 헌금봉투를 내미는 모습이 너무나 거룩해 보였다. 얼마후 어느 권사님은 300불을 헌금하러 오셨기에 인적사항들을 기록하려고 물으니 무명으로 해 달라신다. 사연은 남편되시는 분이 혹 방송을 듣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들으면 시끄러워지고 힘들어 진다며 굳이 말씀을 안하셔서 그냥 무명으로 접수해 두었다. 어려서 부터 헌금을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이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세시가 넘어 삼십대 중반의 남자가 헌금을 하려고 왔다. 500불이었다. 꽤 많은 금액인데 참 믿음이 좋으신 분이구나 하면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저의 집사람이 직접 오려고 했는데 꼬마들 때문에 못가니 저보고 헌금하고 오라고 말해서 왔습니다' 나는 다시 그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맑고 환한 직장인 차림의 그는 기쁨의 미소를 얼굴 가득히 담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부탁을 해 낸 기쁨으로 즐거운 모습이었다. 그 부인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였기에 그 남편의 마음이 온통 부인을 향한 헌신으로 가득찼을까? 그 부인이 하고자 하는 것이면 머리털을 뽑아서라도 집신을 삼아 주고자 하는 지고지순의 사랑을 보는것 같았다. "여보, 당신 하라는 대로 헌금 잘 하고 나 지금 출발해." 셀폰으로 보고하면서 멀어져 갔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다급한 전화가 왔다. 방송국에서 내 셀폰 전화번호를 계속 알려 주어서이다. 전화속의 주인공은 여자집사님이었다. "저, 두시간 전에 마켓 나오다 헌금했던 사람인데요, 지금 막 방송을 들으니 3천불 매칭펀드를 하는데 모금액이 미달이라 안될것 같아 제가 부족한 금액을 채우겠습니다. 제가 그곳에 도착하면 5시 15분쯤 되어 늦으니 빨리 천이백불 헌금을 방송국에 알려 주세요" 이 말을 듣는 나는 목이 메었다. 아름다움을 넘어 경건함 마저 느끼며 나는 즉시 방송국에 전화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5시 1,2분 전인데 코너스톤 교회의 이종용 목사님이 진행하고 있었다. 본인의 원에 따라 '어느 집사님'이라고 무명으로 방송되었다. 얼마 지나 그 헌금의 주인공이 오셨다. 지극히 수수한 옷차림에 소박한 미소를 가진 30대후반 여집사님이셨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함께 사진 한장을 찍고 싶어도 그 집사님의 귀한 마음에 작은 티가 되는것 같아 참고 또 참았다. 정말로 오늘은 아름답고 선한 모습들을 만나고 대화 하면서유쾌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언젠가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나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을 떠 올리면서 그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 매칭펀드 : 일정시간 내에 제시금액을 충족하면 큰 금액을 내겠다는 제안의 헌금방식. 예로 4시 30붑 부터 5시 사이에 5천불의 헌근이 이루어 지면 5천불 또는 만불을 헌금하겠다는 일종의 펀드 레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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