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고추에 울었다

2005.04.05 04:24

고추스테 조회 수:308 추천:10

청양 고추에 울었다.

마구, 악착같이, 억척스레 청양 고추를 사오라는 말을 무시 할 수 없었다.
순전히 그 매운 고추를 된장에 푸~욱 찍어 먹고 싶다는, 마누라의 식탐 때문에 많이 당황했다.  
청양 고추가 맵다는 건 상식으로 알고 있으나 그것을 어디서 파는지, 초봄인데 그게 시장에 나와 있는지도 몰랐다.
있어도 문제였다.
법률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그걸 들고 신사체면에 미국 땅을 밟는다는 게 영 스타일 구겨지는 강요였다.

인터넷으로 '청양고추'를 치니 많이 검색되었으나 전화를 걸때마다 풋고추는 없다고 했다.
내가 달고 다니는 고추는 악세사리인가 쩝~! 투덜대면서도, 무써븐 마눌의 명령을 좇아 고추 빠져라 흔들며 고추를 찾아 나섰다.
나는 해냈다.
동태찜 단골 식당 아줌마가 어디선가 구해 주었다.
비닐 봉다리에 넣은 고추를 들고, 또 다른 고추를 달고 위풍당당 미국에 입국했다.
마중 나 온 옆지기의 첫 마디가, 눈물겹게도 "청양고추 가지고 왔지?"였다.

큰뇬 작은 뇬 식탁에 둘러앉아 오랜만에 저녁을 먹었다.
청양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와사와삭 효과 음향을 곁 드리며 먹어대는 모양이 신통하다.
바로 이 맛이라며 하나 먹어 보라 권한다.
죄 많은 인생 무슨 힘이 있나.
못 이긴 채 된장 찍어 깨물었더니, 와삭와삭은 커녕 즉시 와~왁 비명이 나왔다.
이건 인간이 아니다.
아니 이런걸 와자작 씹어 대는 인간은 인간 일수가 없다.
불이 난 입 때문에 당황하는 모습을 그윽하게 지켜보는, 된장 묻은 마눌 입가의 미소가 무섭다. 그리하여 난 오늘밤이 무섭다.
냉수를 들이키며 불 난 입안을 헹궈 내며 본 식탁의 청양 고추는 말이 없다.
가지런히 누워 있는 고추를 보며 문득 이런 싯귀가 떠오른다.

풋고추가 단단한 건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라는 것이고
내 앞의 청양고추가 누워있는 건
느긋하게 세상을 누워서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 집 찾아 온 고추가 고개를 드는 건
여자 앞에서 항상 당당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청양고추 우드득 씹어 먹는 모습을 목격 한 후 고개를 숙이는 건
여자를 존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그 소음이 소름끼치기 때문이며 밤이 무서운 탓이다

청양 고추를 먹고 눈물도 안 흘리는 걸 보며
오히려 고추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모순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추를 먹고 입안이 뜨거워지는 건
때가 되면 고추가 붉어지는 이유와 같은 것이니
고추가 어느 순간 커지다
와자작 소리에 곧바로 작아지는 건
고개 숙인 남자들이 상상하는 그 엽기적 입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제의 고개 숙인 밤은 청양 고추의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 각설하고, 설악산 등정 인증서 공짜로 준 심사 위원장이 왔다고 훌륭하신 이곳 산악회원께오서 함흥냉면 사준닥해서 8가로 출발하는데 혹시 함흥냉면 매운 맛이 청양 고추 맛이 아니길 나는 베니스 길에 서 있는 팜추리에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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