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처럼/문정희

2006.01.18 04:54

문인귀 조회 수:557 추천:57

어린시절 나는 어서 어머니가 되고 싶었다.
두 팔 안에 꼭 안기는 아이를 낳아
젖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 낳아 미처 다 키우기도 전에
어느새 할머니가 곁에 와 계셨다
어미만 되지 말고 당신처럼
어서 할머니도 돼보라고 성화를 부리셨다
희고 부드러운 머리카락 깊은 주름살
눈 어둡고 귀 어두워 편안한 대지를
선물처럼 나누어 주시려고 했다.
귀여운 손자들을 안을 수 있도록
안방도 서둘러 물려주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스멀스멀 기어드는 이별의 예감,

      -문정희(1949~) ‘선물처럼’ 중에서



계집아이는 어서 커서 어머니가 되고 싶었다. 아기를 낳아 젖을 물리는 어머니가 부러웠다. 그런데 정작 아이를 낳자 어머니는 없고 할머니가 곁에 와서 어미가 된 다음에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란다. 어미일 때 나누어주던 일들이 할머니가 되어서야 모두 비워주는 나누어줌으로 완성되는 것이라며 어서 할머니가 되라고 재촉을 하신다. 어머니는 기다리기도 전에 너무 빨리 당도한 선물처럼 이렇게 할머니가 되어가는 것인가 보다.

                                               -문인귀/시인


미주한국일보<이 아침의 시>2005년7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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