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밥/이상국

2008.09.26 00:56

문인귀 조회 수:1012 추천:97

감자밥

                   이상국


하지가 지나고
햇감자를 물에 말아 먹으면
사이다처럼 하얀 거품이 일었다

그 안에는 밭둔덕의 찔레꽃이나
소 울음도 들어 있었는데
나는 그게 먹기 싫어서
여름이면 어머니랑 싸우고는 했다
그 후 논밭과 사는 일은
세상에 지는 일이라고 나는 멀리 떠났고
어머니도 감자밭을 버리셨지만

해마다 여름이 와서
온몸에 흙을 묻힌 채
시장에 나오는 감자를 보면
거기에 어머니가 있는 것 같아
나는 빈집처럼 허기진다.





   가난했던 시절, 꽁보리밥에 감자를 넣어 지은 밥을 먹고 살았다.
   늘 허기로 대하는 밥상에 놓인 꽁보리밥 그 속에 들어있는 감자 두어 개 뽑아내고 나면 마치 동굴이라도 허물어 내리듯 꽁보리밥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들 녀석은 이러한 감자밥이 싫었다. 맛도 맛이었겠으나 그 가난을 먹고사는 게 싫었다.
   아들이 도회지로 떠나고 나니 어머니도 감자밭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찔레꽃도, 소 울음도, 고향의 물소리까지 들어있는 어머니의 굽은 손등 같은 감자가 온 몸에 흙을 묻힌 채 시장에 나와 있다.
   투정만 부리던 아들이 그 감자를 보며 허기가 지는 것은 어인 일일까.
   감자를 캐다 돌아보시던 어머니가 그곳에 앉아 계시는 것만 같은 그 허기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문인귀<시인>


미주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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