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한 권 뿐인 책
-아내의 환갑을 보내며
오정방
나보다 여섯살 아래인 정해丁亥생 아내가 바로 오늘 환갑을 맞이했다.
출생일로부터 21,915일 째가 되는 날이다. 스무 한 살에 내게 시집
온 뒤에 38번 째 생일을 함께 보내는 셈이고 우리는 오는 10월이면
결혼 39주년을 맞게 된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아내의 생일을 잊어버리는 남편이 어디 있을까마는 나는 한 번도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을 때가 없었다. 대개는 카드에 꽃다발과 선물, 그리고 축하의 말로 아내를 기쁘게 해주었는데 올해는 60갑을 맞는 환갑이 되는지라 무엇으로 특별한 선물을 하여서 깜짝 놀라?해줄까 고심하였다. 선물도 선물이지만 기쁨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장본인 모르게 깜쪽
같이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선물이 좋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 사이에 귀띔으로 마음을 떠보았지만 특별히 원하는게 없다고 하여 더욱 고민이 되던 가운데 나는 나름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그동안 내가
썼던 작품들 속에 아내를 위해 썼거나 아내와 함께 느낄 수 있는 추억이 담긴 시들을 골라 책을 한 권 만들어 주는 것이 좋겠다 하는 데에 내 생각이 미쳤다. 물론 아내가 읽어보지 않은 것도 적지 아니 있는터
였다.
내가 지금까지 인터넷에 발표한 작품이 1,200편쯤 되는데 그 가운데
시詩나 시조時調 153편을 고르기로 하고 이 세상에 1 권밖에 없는 책을
꾸미기로 했다. 예수님의 지시로 베드로가 그물을 올려보니 그 속에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다는데 나도 인터넷 바다에서 이 숫자를 건져
올려 책제목을 ‘사랑의 시편들 153’이라 정해두고 아내 모르게 1편,
1편씩 카피아웃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거의 다 되었다 싶을 적에
아내의 환갑을 축하하는 축시로 시조 1편(4수)을 지어서 책머리에 붙이고 표지와 판권까지 만들어 10여일 만에 책을 완성해 놓았다.
그리고 꽃집에 의뢰하여 흑장미 60송이를 바구니에 잘 꽂아 아무도
모르게 교회로 배달시켰다. 또한 제과점에 직접 찾아가서 60명이 먹을 생일 케익을 맞추고 아내의 이름과 60회 생일축문을 쓰도록 일렀다.
숫자 60이란 양초와 컷팅 나이프와 성냥을 따로 준비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까지 아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도 그럴것이
생일은 23일이고 내가 계획한 특별 이벤트는 사흘 전인 20일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친 뒤 친교시간으로 잡아 놓았기 때문이다.
20일 아침에 선물을 포장하고 생일케익도 찾아오고 다른 주일과 특별
하지 않게 한 차로 교회에 갔고 주일예배후에 드디어 친교시간이 되었다.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생일을 첫주에 한꺼번에 축하해주기 때문에
특별히 케익을 자르는 일이 없어 모두 의아해 하는 가운데 아내가 불려나와 케익 앞에 섰을 때에서야 눈치를 챘다. 촛불을 붙이고 축하송을
불러주고 케익을 컷팅하고 나서 이쁜포장지에 잘 포장한 책을 전달하니 아내는 놀라고 감격해 하였다. 이어서 핑크색 장미 한 다발을 꺼내
마침 작은 딸네집에 가셔서 참석치 못한 장모님에게 드렸는데
이것을 자기에게 주는줄 착각하고 있을 순간 옆방에 보관 중이던 흑장미 60송이 바구니를 건네주니 무거워서 받기조차 어려워 했다. 식탁위에 올려 놓은 뒤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조용히 축하의 허그를 해주었다. 아내의 감동은 역력히 얼굴에 나타났다. 다행한 것은 눈물까지는
흘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혹시 눈물을 보이면 어떻게 하나 하고 손수건까지 준비를 했었는데...
문제는 저녁시간이었다. 2시에 교회를 떠나 장모님이 계시는 처제집으로 갔다. 이미 처제에게는 저녁시간을 비워두도록 일러놓았다. 그보다 앞서 자식들이 알라스카 크루즈여행을 떠나시라고 수차례 얘기하였고
나도 동의했지만 아내는 리타이어 하고나서 마음편하게 간다고 극구
사양한 상태이었던지라 최종적으로는 아들 집에 모여 만찬준비를 본인 모르게 하겠다고 내게 귀띔을 했었고 나도 동의를 한 상태였다.
아이들의 연락을 받고 장모님, 처제와 동서, 그리고 우리부부는 식당
으로 자리를 옮기자 하고 내가 앞장서서 아들집으로 올 때까지도 아내는 그저 좋은 식당으로 가는줄로만 알았다니 얼마나 철저히 연막전술을 폈던지 사실 나도 골치가 좀 아팠지만 한 편으론 즐겁기만 했다.
집안에 들어서니 전혀 생각지도 않게 딸네 식구들까지 다 와있고 손주
들이 할머니 생일 축하한다고 팔에 안기고 식탁에는 푸짐한 음식을
다 차려놓은 것을 보고 아내는 여간 기쁘하지 않았다. 철저히 속긴
하였지만 그래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만찬은 아름답게 진행되었고 그날 저녁 우리부부는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딸아이와 아들이 전해준 축하카드와 크루즈여행 경비도 들어있는
두둑한 봉투를 받아가지고…
<2007. 5. 23>
-아내의 환갑을 보내며
오정방
나보다 여섯살 아래인 정해丁亥생 아내가 바로 오늘 환갑을 맞이했다.
출생일로부터 21,915일 째가 되는 날이다. 스무 한 살에 내게 시집
온 뒤에 38번 째 생일을 함께 보내는 셈이고 우리는 오는 10월이면
결혼 39주년을 맞게 된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아내의 생일을 잊어버리는 남편이 어디 있을까마는 나는 한 번도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을 때가 없었다. 대개는 카드에 꽃다발과 선물, 그리고 축하의 말로 아내를 기쁘게 해주었는데 올해는 60갑을 맞는 환갑이 되는지라 무엇으로 특별한 선물을 하여서 깜짝 놀라?해줄까 고심하였다. 선물도 선물이지만 기쁨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장본인 모르게 깜쪽
같이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선물이 좋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 사이에 귀띔으로 마음을 떠보았지만 특별히 원하는게 없다고 하여 더욱 고민이 되던 가운데 나는 나름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그동안 내가
썼던 작품들 속에 아내를 위해 썼거나 아내와 함께 느낄 수 있는 추억이 담긴 시들을 골라 책을 한 권 만들어 주는 것이 좋겠다 하는 데에 내 생각이 미쳤다. 물론 아내가 읽어보지 않은 것도 적지 아니 있는터
였다.
내가 지금까지 인터넷에 발표한 작품이 1,200편쯤 되는데 그 가운데
시詩나 시조時調 153편을 고르기로 하고 이 세상에 1 권밖에 없는 책을
꾸미기로 했다. 예수님의 지시로 베드로가 그물을 올려보니 그 속에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다는데 나도 인터넷 바다에서 이 숫자를 건져
올려 책제목을 ‘사랑의 시편들 153’이라 정해두고 아내 모르게 1편,
1편씩 카피아웃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거의 다 되었다 싶을 적에
아내의 환갑을 축하하는 축시로 시조 1편(4수)을 지어서 책머리에 붙이고 표지와 판권까지 만들어 10여일 만에 책을 완성해 놓았다.
그리고 꽃집에 의뢰하여 흑장미 60송이를 바구니에 잘 꽂아 아무도
모르게 교회로 배달시켰다. 또한 제과점에 직접 찾아가서 60명이 먹을 생일 케익을 맞추고 아내의 이름과 60회 생일축문을 쓰도록 일렀다.
숫자 60이란 양초와 컷팅 나이프와 성냥을 따로 준비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까지 아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도 그럴것이
생일은 23일이고 내가 계획한 특별 이벤트는 사흘 전인 20일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친 뒤 친교시간으로 잡아 놓았기 때문이다.
20일 아침에 선물을 포장하고 생일케익도 찾아오고 다른 주일과 특별
하지 않게 한 차로 교회에 갔고 주일예배후에 드디어 친교시간이 되었다.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생일을 첫주에 한꺼번에 축하해주기 때문에
특별히 케익을 자르는 일이 없어 모두 의아해 하는 가운데 아내가 불려나와 케익 앞에 섰을 때에서야 눈치를 챘다. 촛불을 붙이고 축하송을
불러주고 케익을 컷팅하고 나서 이쁜포장지에 잘 포장한 책을 전달하니 아내는 놀라고 감격해 하였다. 이어서 핑크색 장미 한 다발을 꺼내
마침 작은 딸네집에 가셔서 참석치 못한 장모님에게 드렸는데
이것을 자기에게 주는줄 착각하고 있을 순간 옆방에 보관 중이던 흑장미 60송이 바구니를 건네주니 무거워서 받기조차 어려워 했다. 식탁위에 올려 놓은 뒤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조용히 축하의 허그를 해주었다. 아내의 감동은 역력히 얼굴에 나타났다. 다행한 것은 눈물까지는
흘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혹시 눈물을 보이면 어떻게 하나 하고 손수건까지 준비를 했었는데...
문제는 저녁시간이었다. 2시에 교회를 떠나 장모님이 계시는 처제집으로 갔다. 이미 처제에게는 저녁시간을 비워두도록 일러놓았다. 그보다 앞서 자식들이 알라스카 크루즈여행을 떠나시라고 수차례 얘기하였고
나도 동의했지만 아내는 리타이어 하고나서 마음편하게 간다고 극구
사양한 상태이었던지라 최종적으로는 아들 집에 모여 만찬준비를 본인 모르게 하겠다고 내게 귀띔을 했었고 나도 동의를 한 상태였다.
아이들의 연락을 받고 장모님, 처제와 동서, 그리고 우리부부는 식당
으로 자리를 옮기자 하고 내가 앞장서서 아들집으로 올 때까지도 아내는 그저 좋은 식당으로 가는줄로만 알았다니 얼마나 철저히 연막전술을 폈던지 사실 나도 골치가 좀 아팠지만 한 편으론 즐겁기만 했다.
집안에 들어서니 전혀 생각지도 않게 딸네 식구들까지 다 와있고 손주
들이 할머니 생일 축하한다고 팔에 안기고 식탁에는 푸짐한 음식을
다 차려놓은 것을 보고 아내는 여간 기쁘하지 않았다. 철저히 속긴
하였지만 그래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만찬은 아름답게 진행되었고 그날 저녁 우리부부는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딸아이와 아들이 전해준 축하카드와 크루즈여행 경비도 들어있는
두둑한 봉투를 받아가지고…
<2007.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