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사회보장국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행렬이 내 눈길을 붙잡는다. 처음 미국 와서 경험한 사회보장국 직원의 뻣뻣했던 첫인상을 떠올리며 저들의 목적이 잘 이뤄지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그 곳을 지나간다.
직장에서 어렵게 시간을 낸 남편과 함께 오후 4시에 문 닫는 사회보장국에 헐레벌떡 도착한 것은 4시2분이었다. 직원이 막 문을 닫고 있었다. 좀 늦었지만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해 보았지만 단호한 'No'였다. '인정머리라고는…' 중얼대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곳뿐이 아니다. UPS, FedEx 백화점 레스토랑 등등 이곳 사람들의 칼 같은 시간관념 앞에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다. 기다려주지 않음으로 유지되는 사회질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 관계에서의 시간관념은 어떨까. 몇 분 늦게 모임에 나타나거나 행사를 늦게 시작하거나 할 때 우린 흔히 '코리안 타임'이라고 한다. 일찍 와서 기다렸을 때는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유와 느긋함의 다른 말로 느껴질 때도 있다.
시간관념이 철저한 사람에게도 예상치 않게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때가 또 누군가를 기다리게 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기다림'이라는 시간의 강물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연의 각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연애, 결혼, 우정… 하물며 가족 간에도 기다림의 시간을 잘 견뎌낸 후에야 쌓이는 신뢰가 있다. 누군가를 끝까지 믿고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금처럼 통신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우리 세대는 기다림이 생활의 일부였다. 부모의 중매로 한 남자를 기다린 친구가 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카페에 나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히 시간 맞춰 집을 나갔다는 남자 측의 연락을 전해 받은 후로도 몇 시간이 지났다. 양가 부모들은 어찌 된 일인가 하여 속을 태우고, 친구 역시 걱정이 되면서도 자존심도 상하고 온갖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포기하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한 남자가 사색이 되어 나타났다. 첫 만남이라 잘 보이려고 이발소에 갔는데 이발하는 동안 잠이 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어이없었던 그 이유가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부드럽게 했고 1년의 사귐 끝에 결혼에 이른 친구의 사연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전화나 카톡으로 실시간 상황보고가 가능한 요즘 세대에는 드물 것 같은 우리 시대의 낭만이다.
기다리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순간의 간절함,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때로는 설렘으로 때로는 고통으로 다가와 우리를 시험하는 기다림. 기다림의 사계절을 경험한 후에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현실적인 저 기다림부터 내일은 좀 더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다림까지 우린 일생 무언가를 기다리며 산다.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로 인해 마음을 낮출 수 있고 이루어졌던 일로 인해 희망을 배운다. 기다림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고 '살아있음'의 다른 표현이다.
미주중앙일보 2013.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