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한 사람, 내 편

2020.05.09 17:31

노기제 조회 수:10

20200214                             남은 한 사람, 내 편

                                                                                       노기제

 

   “숨쉬기가........, 다 된 것 같다. 그간 고마운 게 많았다.”

   유언처럼 짧게 전해 진 메시지에 심장박동이 기승을 부리니 나도 따라 숨쉬기가 곤란해진다. 해가 바뀌면서 부쩍 통증을 호소 해 오던 작은오빠가 보낸 카카오 톡 문구다.

   산다, 죽는다에 연연하지 않고 의연하게 살아오던 대로 살자. 가야할 때가 되면 묵묵히 받아들이자. 뭔 호들갑이냐고 다독이며 인생의 마무리 작업을 돕고자 했던 시간들이 저만치서 웃음기 없이 나를 바라본다.

   친구 어머님 끝마무리도 혼신을 다한 기도로 해 드렸고, 나이가 채워지지 않은 환자들에겐 꼭 회복하기를 원해서 기도를 했다. 내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 분명 병상을 털고 일어나리라 기대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그들은 고통스러워 불행한 얼굴을 내게 보이며 떠났다. 모두 다.

   환갑을 한 해 앞둔 시누님도, 시 아주버님도 병상을 털지 못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내 정성어린 기도로 끝을 삼고 떠나셨다. 친정 엄마도 입맛 잃고 기운 없어 말도 못하시더니 내 마무리 기도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거칠게 몰아쉬던 마지막 호흡이 기억난다.

   평화롭게 오빠를 설득한다. 오빠가 살아 온 생활 패턴으로 얻은 암이란 녀석을 두 번씩이나 제거 수술을 했지만 이젠 폐까지 점령했다니 호흡이 곤란한 결과야 당연한 것 아니겠나. 통증을 동반했다면 진통제로 피하고, 그도 아니면 몰핀 주사로 시간을 연장하다 끝나는 것이 순서니 그러려니 준비하도록 종용한다.

   시신기증도 좋은 일로 마무리 하는 방법일진대 선택 여부를 물었더니 버럭 언성을 높인다. “, 나 그렇게 금방 안 죽어.” 나랑 뜻이 맞아 죽을 준비가 잘 진행되나 싶더니 갑자기 거부반응이 나온다. 역시 남의 얘기에 내가 너무 깊게 간섭을 했나보다. 나 자신도 시신기증 서류를 작성하지 않고 있다. 남편의 동의가 필요하다. 남편의 반응이 걱정스러워 서류를 건네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막상 끝 시간이 닥치고 보니 피하고 싶은 심정이 느껴진다.

   자식이 있으면 뭐하나. 남겨 줄 재산 없는 병든 부모 마지막 정리 정돈 맡아서 끝낼 자신이 없단다. 무섭기도 하단다. 감당 못하겠단다. 숨어 버리고 싶단다. 하물며 작은오빠에겐 자식이 없다. 핏줄이라곤 나, 나 하나뿐인데 나도 떠안기 싫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수선한 정치로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나라로 오빠 마지막 마무리 하러 가기 싫다.

   그래도 오빤데. 단 한 사람 내편이 되어주는 친정 오빤데. 어찌 싫다는 소리가 이리도 금방 나올까. 비행기 타고 13시간 날아가서 마땅히 머물 곳도 없는 한국인데, 누구에게 연락해서 의지 할 사람도 없다. 다행히 오빠 친구들이 주위에 여럿 있으니 대신 해주지 않을까. 구태여 내가 가서 쩔쩔매며 고생하느니 오빠 친구들이 해주면 안 될까.

   “, 팔순이 넘은 노인들이 뭘 해주냐. 요즘은 장례식 같은데 가지도 않아. 할 수 없지. 무연고자로 정부에서 해 줄 터니 넌 걱정하지 마. 우선 통증이라도 잡게 병원에 입원해야겠다.”

   오빠 속마음은 어떨까. 나라도 혼자 가서 곁에 있어 주다가 끝마무리 하느라 고생하더라도 오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난 확고하게 안 가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아예 오빠가 내게 부탁하지 못하도록 일찌거니 선을 그었다. 싫은 건 싫은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못 박고 그 외에 내가 뭘 해 주길 원하느냐 묻고 있다.

   “, 됐어. 해주긴 뭘 해주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넌 아무 걱정 하지 마.”

   여섯 살 터울로 여동생 생긴 후 작은 오빤 아마도 많은 시간을 나 돌보느라 애 썼을 거다. 엄마 도와주려고 우는 동생 등에 업고 달래기도 했고 친구들과 밖에 나가 놀고 싶을 때 집에 잡혀서 나가지도 못했던 날들도 허다했을 텐데 그 많은 작은 오빠의 노고를 난 빚지고 있는 거다. 엄마 아빠 앨범에서 본 사진 중에 내 마음을 찌른 작은 사진 한 장. 오만상을 찌푸리고 울고 있는 애기를 자전거에 태우고 뒤에서 안고 어르고 밀어주는 오빠. 확연한 작은오빠 얼굴이다. 작은 오빠보다 두 살 위인 큰오빠는 나를 봐주는 모습이 어디에도 없다.

   어쩌나. 그래도 한국 나가기 싫은데. 아직도 남편보다는 내 편인 작은오빠. 죽지말지. 까짓 것 전신에 퍼진 암 덩어리 곱게 품고 같이 살지. 그냥 이렇게 카카오 톡하면서 내 편으로 남아 있어주면 좋겠다 오빠야.

 

20200409 중앙일보 문예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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