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기
                        전연희
 
뭍으로 굼뜬 걸음 돌길을 지나 왔다
긴 목이 석 자에다 뼈로 짠 거북등짐
어둠 속 붙들고 설 것은 저 열사흘 달밖에


한기로 떨며 지샌 여름밤 식은 기억
창 낮은 방 한 칸에 불어난 식솔만큼
금이 간 등딱지 위로 관절 앓는 긴 날들


잠시 비껴가는 햇살 바라 목을 빼면
끌려온 바닷물이 하얗게 넋을 잃고
운석이 쏟아진 지붕 별이 몇 개 내리고


부화한 꿈이 자라 낮은 창을 밀어낼 즘
목숨의 밑뿌리에 탁본으로 뜨는 물결
귀퉁이 닳고 헐어진 몸뚱이를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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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이 돌길을 기어 힘들게 낳은 알에서 바다로 살아 돌아가는 생명은 몇

아니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성과 사랑을 쏟는 산고’ 속에 태어나고, ‘거북등짐’

고행 같은 여정 속에 한 생이 심화된다.
적절한 비유적 이미지를 통해 삶의 근원적인 힘이 되는 진정성을 환기하는데,

시로 가는 나의 길이 이와 같았으면. 혼돈의 세상살이가 이 시조 본연의 절제와

율격미처럼 여운을 남길 수 있었으면.

    ‘부화한 꿈’은 아버지의 것만은 아니리라.    

- 안규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