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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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걸치기와 얼치기 / 수필

2021.07.01 09:38

민유자 조회 수:8

걸치기와 얼치기

 

 미국 나성에서 오래 살다 보니 우리 집 음식문화는 매우 다양하게 했다. 외식을 하면 한식, 중식, 일식, 양식, 거기다가 프랑스, 이탈리아 음식과 남미, 중동 음식까지 고루 번갈아가며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사하며 살림을 간단히 줄여야겠다며 많이 없앴다. 그런데 새 집의 부엌이 전에 살던 집과 비교해 좁지 않고 캐비닛 크기도 비슷한데 정리가 잘 안 되었다. 옛날같이 대소가가 함께 사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없이 둘만 사는데 이리 복잡할까?

 

 한식 상차림의 그릇들 만이라면 이렇게 복잡하지 않아도 된다. 양식 식탁의 접시와 볼, 글라스의 크기대로 모든 격식을 다 갖추 지 않아도 많다. 거기다가 일식 그릇도 있고 중국식 요리기구와 다기들도 있다. 예뻐서 아끼며 기는 유럽 제품도 있다. 이렇게 다국적 음식문화를 즐기다 보니 보통 미국 가정에 비해 우리 부엌살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 집 음식문화는 동서양의 복합식이다. 밥과 치를 들여 한식 상을 차리고 한식으로 양념한 갈비나 불고기 또는 닭고기를 구울 때 바비큐로 하면 고기 조각이 좀 크기 마련이다. 그래야 석쇠 사이로 빠지지 않고 기도 쉽고 육즙이 보존되어 맛도 좋다. 그러면 남편은 수저와 함께 포크 나이프를 꼭 찾는다. 나이프로 때는 젓가락보다 포크로 눌러야 고기 조각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 자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의 일이다. 전날 통닭을 사다 먹고 남아서 장고에 넣어둔 가슴살이 있었다. 러리와 야채를 모아 샐러드를 만들었다. 식탁에 놓고 포크를 꺼내려고 수저 서랍을 열었다. 남편이 식탁으로 오면서 “나는 젓가락 줘” 하기에 꺼내는 김에 나도 젓가락을 꺼내왔다. 젓가락으로 샐러드를 먹으니 포크로 먹을 때보다 훨씬 편리하고 쉬웠다. 그 이후로 샐러드에서는 포크가 밀려났다.

 

 이런 얼치기식은 음식을 조리하는데도 적용된다. 치와 가쓰오, 다시마를 넣고 우동 국물을 일 때 우리 집에서는 피자를 배달시키면 딸려오는 일회용 크러쉬드 페퍼를 조금 넣어서 끓인다. 그러면 국물이 상큼하게 매우면서 더욱 따끈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다. 초고추장을 만들 때 딸기 을 설탕 대신 넣으면 맛있다. 어떤 사람은 마른 무말랭이를 세븐업에 불려서 무치면 맛있다고 한다. 해산물을 초고추장 대신 테일소스에 먹어도 손색없이 맛 있다.

 

 남편은 고기나 달걀 요리에는 양식과 한식을 가리지 않고 언제 나 남미식 살사13)를 곁들이길 좋아한다. 쇠고기 스테이크뿐만 아니라 통닭이나 폭찹에도 매콤한 이것을 어 먹고 오믈렛을 먹을때도 이걸 꼭 찾는다. 만들어둔 살사가 남았을 경우 심지어는 튀김이나 대떡에도 살사를 얹어 먹는다.

 

 모든 것이 풍요한 리포니아에서 여러 국적의 양식을 골고루 섭렵하며 즐기다 보니 음식문화가 식성을 따라서 저절로 동서양을 걸친 얼치기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에 꽤 오래 살아도 다른 나라 음식에 적응을 못하는 고집스런 식성의 사람도 있다. 한식을 한 끼만 걸러도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버거조차 김치를 곁들여 먹는 사람도 있다.

 

 허나 음식문화나 식성이야 얼치기가 되든, 걸치기가 되든 무슨 문제겠는가? 그저 감사하고 즐길 일이다. 문제는 의식이 아직도 한국의 좁은 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부분이 꽤 있으니 문제다. 때때로 한국의 뉴스를 보면서 너무나 편협한 처사들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며 안타까운 심정이 된다. 그런가 하면 아직까지 나 자신도 벗어나지 못한 고정관념이 남아있어 종종 남 편의 지적 대상이 되곤 해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종종 있다.

 

 점점 세계가 한 마당이 되어가는 이 시대에 식성보다는 의식이야말로 좁고 편협한 곳에서 고집스럽게 안주할 것이 아니라 걸치기와 얼치기를 하지 말고 하루속히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서 세계화되어야 할 필요가 꼭 있다.

 

13) 살사Salsa - 토마토와 양파를 다지고, 라임 주스를 넣고 마늘, 매운 고추와 실란트로(향초)를 넣어 만든 남미식 소스.

https://youtu.be/40CFr5ivUv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