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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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에드나 / 수필

2024.11.12 18:30

yujaster 조회 수:2

에드나 /민유자

 

  그녀는 한쪽 다리가 없는 팔십 중반의 흑인 할머니다. 초면부터 말투나 행동거지가 점잖고 교양이 있어보여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이 나를 압도했다. 고령의 할머니이기는 해도 십년은 젊어보이는 단정한 용모에다 인상이 좋았다.

 

  이곳 양노병원에서는 한인들에게는 한국 음식이 제공되기 때문에 한국 할머니들이 상당수 입주해있다. 물론 할아버지도 있지만 할머니에 비해 극히 드문 편이다.

에드나는 자기의 공간을 늘 단정하게 유지한다. 침대를 잘 정돈하고 작은 인형을 놓아두었다. 창가에는 커튼 색과  잘 어울리는 작고 예쁜 조화를 놓아두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나름 특색을 갖고 있다. 한국 할머니들의 공간은 알록달록 고급 이불과 화려한 조화로 장식이 되어있지만 오밀조밀 복잡한 잡동사니로 쌓여있는데 비해 에드나의 공간은 단순하고 간단하다. 양노원에서 공급되는 담요일 뿐이지만 색의 조화로 안정적이고 일면 세련된 분위기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인품을 보여준다.

그녀는 젊어서는 요리사로 유명 인사의 가정에 세프로 오래 일했다며 나에게 그사람들의 이름을 말하지만 난 알지 못한다. 지금은 아무 연고도 없고 대륙의 동쪽 사반나에 여동생이 생존해 있을 뿐이라 하며 사진을 보여준다. 그녀를 본 지는 십년도 넘었다고 한다.

당뇨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뒤로 의사가 정해준 이 양로병원에 입주한 지 오년이 되었다고 한다. 외다리로는 걸을 수 없어 온 종일 휠체어를 타고 움직인다. 작은 공간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방향을 틀어 돌리려면 인내심을 가지고 몇번씩 앞뒤로 움직여야 가능해진다. 때로 무엇을 떨어뜨리게 되면 쉽사리 집어올릴 수 없다. 나는 반사적으로 얼른 그녀를 도와 집어주려 했다. 그녀는 정색을 하고 단호히 나를 저지시키고 끝까지 혼자 노력하여 해결했다. “오늘은 네가 나를 도와 집어줄 수 있지만 늘 내 곁에 있는 것은 아니니 어차피 난 스스로 이것을 해결해야 해!”하며 싱긋 웃는다. 독립심이 강하게 단련된 서양식 사고방식이다. 시모의 재활 기간 동안 난 한달이 넘도록 매일 이곳에 출근을 한다. 오랜시간 방문하는 동안, 나는 여러 할머니의 동네 며느리가 된 것 같았다. 걸핏하면 내게 의지하려는 한국 할머니들과는 상당히 대조가 되는 부분이다. 

 

  에드나는 저녁으로 로티세리 치킨을 밖에서 주문해왔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빙고 게임에서 이기면 25센트를 받는데 그것을 모았다가 별식을 즐기는 것이다. 아마도 일년에 한두번 쯤이나 가능한 일일 테다. 양노병원에서 제공되는 음식은 대부분 정해진 한도 내에서 반복되다보니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클지 알고도 남을만 하다. 연고자가 없으니 방문객도 없고 이곳에 오래 있다보면 사회와 점점 단절되어 다른 사람들처럼 누가 무엇을 대접하는 사람도 없다.

며칠을 눈여겨 보니 점심 후에 에드나는 서랍에서 페퍼타올에 싼 물건을 조심스레 꺼내더니 밝은 창가에 앉아서 한참 씩 골돌히 들여다 보았다. 이상하기도 하고 궁금증도 생겼다. “ 아니 에드나 그게 뭐예요?”  에드나는 무릎에 놓인 페퍼타올을 열어 보여준다. 그것은 깨진 거울의 유리조각이다. 

양노병원에서는 의식주를 모두 책임지지만 정해진 것 외의 것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녀에겐 귀할 수 밖에 없다. 쓰던 손거울이 깨진 것을 버리지 못하고 그걸 간직해서 쓰고 있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고 보니 잘 보이지 않았다. 페퍼타올로 싸두었으니 서로 마모되었다. 그래도 그중 나은 것을 골라서 검은 얼굴에서 올라오는 흰 털을 뽑는 거다. 

어머니가 양노병원을 졸업하고 집에 오시던 날, 나는 콤팩트 모양의 손거울을 에드나에게 선물했다. 한쪽은 보통거울이고 다른 쪽은 돋보기 거울이다.

    

  달포쯤 지나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나들이 하는 날 계시던 양노병원을 방문했다. 캔디와 껌, 과일을 사가지고 갔다. 여러분들과 담소를 나누는데 에드나가 여늬때처럼 창가에 자리를 잡더니 서랍에서 페퍼타올에 싼 그 깨진 거울 조각을 들고 들여다보고 있다. 난 그녀에게 다가가서 “에드나! 내가 드린 거울은 어쩌시고 아직도 이걸 보세요?”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무슨 말을 하는가 의아한 표정이다. “내가 전에 손거울을 선물했는데 그것은 어찌 하시고 여태 이걸 … 서랍 속을 한 번 찾아보세요.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녀는 서랍 속에서 눈부신 꽃무늬의 반짝이는 컴팩트를 찾아내고는 열어본다. 깨진 유리조각에 비하면 얼마나 화안한가! 그녀는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는 꿈을 꾸는 듯 나를 바라본다. 아! 안타깝게 그녀에게도 치매가 찾아온 모양이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 엘렌 Ellen Langer는 1979년 혁신적인 심리 실험 Counterelockwise sturdy을 했다. 평범한 가정집에 20년 전의 환경을 꾸며놓고 칠팔십대 노인 8명을 모아 얼마간 생활하게 했다. 1950년대의 노래를 듣고 그 시대의 영화를 보고 청소와 요리 빨래를 손수 하도록 했다. 처음 환자들은 죄충우돌 시행작오를 격으며 불만은 많았으나 결과는 놀라웠다. 보호자 없이 생활이 불가능했던 환자가 혼자 옷을 입고 단추를 끼울 수 있었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식욕도 왕성해 졌으며 거의 20년 전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는 글을 보았다. 

에드나도 양노병원에 오지 않았다면, 양노원의 판에 박힌 생활의 반복으로 무료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그렇게 빨리 치매가 찾아오지는 않았지 않을까?    

평소에 절제와 부단한 체력 단련으로 건강 관리를 해서 자기의 생활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시간을 늘이고 남의 손을 빌어야하는 시간을 줄일 필요가 절실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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