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감상> 메일로 받은 시

2006.03.22 13:52

이기윤 조회 수:927 추천: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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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일-244호]  

메이비 / 김염수

  
  우리는 고무신으로 찝차를
만들었다. 미군 찝차가
달려왔다. 네가
내리고.

미군들이 쑤왈거리다가 메이비,
하고 떠나고. 그리하여 너는
메이비가 되었다.
미제 껌을 씹는 메이비. 종아리 맞는
메이비.

흑판에 밀감을 냅다 던지는
메이비. 으깨진 조각을 주으려고
아이들은 밀려 닥치고.
그 뒤에, 허리에 손을 얹고 섰는
미군 같은 메이비.

남자보다 뚝심 센 여자애보다
뚝심 센 메이비. 여자애를 발길로
걷어 차는 메이비.

지금은 비가 내리고.
어느 틈엔지 미군들을 따라
떠나 버린 메이비.

바다 건너 가 소식도 모를
제 이름도 모르던 메이비. 어차피
어른이 되어서는 모두가 고아였다.
메이비. 다시는 너를
메이비라고 부르지 않을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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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 상 포 인 트

―하루꼬짱, 메이비를 그리며

전후 초등학교 교실의 풍경은 과연 어떠했던가요. 아마도 이 시 「메이비」가 매우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사회제도와 도덕윤리, 가치관이 붕괴되고 낯설고 새로운 모습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일본적 감수성이 물러나고 대신 미국적인 상관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동안 반백 년 가까이 사람이름만 하더라도 에이꼬짱, 하루꼬짱, 마사오상 불리던 것들이 퇴조하면서 대신 쑈리김, 쟈니윤이니 꺼삐딴리니 하는 서양식, 특히 미국식 이름들이 낯선 모습으로 생활속에 끼어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50년대 전후 시대의 쪼무래기 아이들이 미군 찝차를 따라 다니며 ‘할로, 할로!’, ‘오케이’, ‘?c코렛’하며 손 내밀던 모습이 새삼 아프게 떠오릅니다. 바로 그때 ‘메이비’가 난데없이 등장한 것이지요. 해방 후 미군이 이땅에 주둔하면서 그들이 아무렇게나 뿌린 씨가 바로 메이비로 자라난 것입니다.
메이비라뇨? 아마도 그것은 영어의 ‘may be' 즉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잘 모른다’라는 불확실한 삶 또는 예측불가능한 인생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겁니다. 그만큼 전후 폐허와 상처 속에서 다시 시작된 국민학교 교실의 풍경은 시대상만큼이나 복잡하고 짐작하기 어려운 모습이라는 뜻이지요. 그렇게 벼 속에 피처럼 섞여 떠돌던 ‘메이비’들, 그 혼혈아들은 〈바다 건너 가 소식도 모를/제 이름도 모를 메이비〉들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가 이제는 민들레처럼 뿌리내리고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사실 생각해보면 그 많던 이땅의 전쟁 고아 친구들도 모두 메이비가 아니었을까요. 아니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어서는 모두가 고아가 되는〉것이기에, 그것이 또한 나의 또다른 모습이기에 이제 다시 메이비라고 누구를 멸시할 수는 없을 게 분명합니다. 새삼 이제는 그 어딘가에서 자식들 낳고 잘 살고 있을, 또는 불행해져 있기도 한 그 시절 메이비 친구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닌가 합니다.

- 김재홍: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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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일-246호]  


사랑은
         이인원
  

눈독 들일 때, 가장 아름답다
하마,
손을 타면
단숨에 굴러 떨어지고 마는
토란잎 위
물방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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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 상 포 인 트

―눈독 들일 때 사랑은 가장 아름답다

참 깜찍하다고 할까요. 요염하다고 할까요. 그도 아니면 비수처럼 날카롭고 섬세하다고나 할까요. 아주 짧게 인상적인 생의 한 국면, 사물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묘파해 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사물은 〈눈독 들일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이미 결판나 버린 것,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진행중인 것, 미완의 것일 때 더욱 빛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 움직이는 활동성을 지니고 있으며 긴장력이 팽팽하게 촉발되는 것입니다.
아름답다는 것, 美라고 하는 것, 또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형성중일 때, 아직 진행되고 있을 때 섬광처럼 그 빛을 발하는 것이지요. 미완의 것이어서 긴장이 지속될 때, 꽃처럼 싱싱하고 태양처럼 빛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한순간 깨어질지 몰라 조바심 칠 때 미적인 긴장이 지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손을 타면/단숨에 굴러 떨어지고 마는〉것처럼 더욱 아끼고 근심하여 긴장을 지속시켜 갈 때 미적 긴장력이 더욱 확대되고 심화돼 가는 것입니다.

- 김재홍: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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