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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황혼이 지면

2022.01.18 12:02

라만섭 조회 수:55

황혼이 지면

 

붉게 물든 저녁노을은 언제 보나 아름답다.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태양의 웅자를 보는 것과는 퍽 대조적이다. 무엇을 완성한 후의 고요를 대하는 듯하다. 인생의 황혼도 그런 것일까.

 

삶의 만족도에 관한 연구는 다양하다.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론은 다르게 나타난다. 조사 방법, 객체적 조건(연령,종교,결혼,직업,환경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황혼기를 맞은 65~79세의 연령대에서 삶의 만족도가 절정을 이룬다는 내용의 통계 수치가 나의 눈길을 끈다. 영국의 국립 통계청(ONS)이 자국민 3십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얻은 결론이다. 일상생활에서 오는 갖가지 부담에서 해방된 이들은, 이전에 비해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일이 훨씬 줄어든 결과인 것 같다. 사회 활동이 왕성한 45~59세 중년기에 가장 낮은 만족도를 보이고, 80대에는 건강이나 외로움 등의 이유로 현저히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만족도의 유턴(U-Turn) 유형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아라고 하는데, 안정적 노후 생활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못한 후진국에서는 사정이 많이 다를 것이다.

 

빠르게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오늘을 두고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법적 은퇴 연련인 65세 까지를 제1의 인생이라고 한다면, 그 이후에 35년 이라는 긴 제2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 된다. 앞서 지적한 바 있는, 삶에서 가장 행복한 때가 이시기에 해당된다. 백세를 넘긴 나이임에도 바쁜 강연 스케쥴을 무탈하게 소화시켜 가는 한국 연세대의 김형석 명예교수에 의하면, 인생은 끊임없는 성장의 연속이라고 한다. 삶을 다할 때 까지 배움을 멈출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황혼의 언덕에 서서 지난 세월의 삶을 관조하고 슬기로이 지혜를 쌓아가는 여유 있는 노년의 모습에서 품격 있는 삶을 본다.

 

젊은 시절의 경험 부족에서 오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떠오른다. 유치한 푸념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총각 시절의 이성 교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여자를 배려하고 사랑하는데 서툴렀다. 2천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부부생활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바 있는 텍사스 주립 대 교수진의 중진 파이퍼 슈워츠박사는, 이혼 후에 만난 새 배우자와 보낸 가장 만족한 시기는 55세 이후라고 고백한다. 결혼()생활의 성숙도는 노후에서야 숙성된다는 연구 결과가 주는 교훈은, 사랑을 담당하는 뇌의 기능은 황혼기에도 활발히 작용한다는 것이다. 꽃도 지기 전에 만발한 자태를 한껏 뽐낸다고 하지 않던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에야 비로소 날개를 편 다라는 헤겔의 말은, .마르크스가 그를 비판(헤겔의 법철학 비판)하는데 인용하면서 더욱 유명해 졌다고 한다. 로마 신화 속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는 부엉이를 데리고 황혼녘 산책을 즐겼다고 하며, 부엉이는 지혜로운 신비의 새로 알려져 있다. 대낮의 혼란이 가라앉고 황혼의 고요함이 찾아온 다음에야 부엉이가 날개를 펴듯이, 학문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로 존재하는 현상을 놓고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익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낮 동안의 갖가지 시행착오 끝에 얻어지는 지혜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저물어 가는 황혼의 언덕에 서서 성숙의 고요에 젖어 든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도 곧 날개를 펼 것이고, 이 밤이 지나면 희망찬 새 아침의 해돋이를 마지하게 될 것이다. 2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