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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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쓰다듬고 다스리고 / 수필

2024.05.03 14:34

yujaster 조회 수:28

 

  근래에, 지레 겁을 먹고는 들어가듯 걱정하는 속내가 있다. 유독 나만 그런 아닌가 하고 은근히 맘을 조린다. 아는 사람의 이름도 아지랑이 너머 풋사랑의 얼굴인 가물가물 생각이 난다. 때로는, 사거리의 고장 신호등인양 빨간 파란 불이 제멋대로 깜박거리며 기억의 끈이 불어터진 국수가락처럼 투둑 끊어져버린다. 이로 인해 일상에서 웃지 못할 상황이 심심찮게 일어나 염려를 더한다.

 

  아마릴리스 화분에 꽃대가 여덟 개나 올라와 아기 얼굴 화사한 꽃이 한대에 서너 송이 탐스럽게 피었다. 사진을 동네 그룹 카톡에 올리고 원하는 사람에게는 분양을 하겠다고 했더니 냉큼 신청자가 나타났다. 사람이 전화기 주머니를 손수 만들어 가져왔다. 색상과 디  자인은 물론 야무진 솜씨가 돋보였다. 

넓지도 않은 집을 뱅뱅 돌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전화기와 숨바꼭질을 한다. 안방과 거실 ,부엌, 욕실, 서재를 돌아도 걸음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꼭꼭 숨은 전화기를 찾아 헤매다가 어이없는 낭패감을 수시로 맛봐야 한다. 없이 남편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여보 내게 전화 걸어봐요!”

성가시던 숨바꼭질이 단번에 해결되었다. 산책을 때나 뒷마당에서 정원일을 때에도 목에 걸거나 어깨에 메고 있으니 좋다. 부엌일을 때에도 손을 자유로이 사용하면서도 전화기가 몸에 붙어있으니 이상 찾기 내기를 필요가 없어졌다. 허둥지둥 헤매고 찾아다니는 혼란한 상황이 이상 벌어지지 않는다. 이리 고마울 수가!

 

  페이스 북에 전화기 주머니의 사진과 함께 간단한 사연을 올려놓았더니 순식간에 댓글이 봇물 쏟아지듯 다투어 올라왔다. 모두가 나의 뜨거운 열혈 동지들이다. 본인들의 경험담이 대부분이지만 남편들의 하소연도 더러 있다. 내가 평소 나보다 한참 젊어서 싱싱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전화를 찾아도 찾아도 얼른 나오지 않아서 냉장고를   열어봤다는 얘기 하며, 실제로 아내의 전화기를 냉장고 안에서 찾았다는 사연도 있다. 벙어리 냉가슴 앓던 무거운 근심이 예상외의 엄청 많은 동지가 있음을 알고 나자 조금 위안이 되었다. 

어차피, 인지 기능은 점점 떨어지게 되어있고 웃지 못할 웃기는 상황은 자주 반복될 밖에 없다. 남의 얘기일때는 눈물을 짜며 배꼽을 잡고 웃어 젖혔을 일들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자신에게 닥치니 웃기기는 커녕 왕짜증이 솟구치다가 자못 걱정스러워진다. 무심코 내디딘 헛발로 나둥그러진 같은 황당한 상실감이 든다. 자주 반복되다 보면 나중에는 점점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세월을 누가 대적할 있을까? 태고이래 발자국도 뒤로는 물러서 적이 없는 세월이 아닌가? 뱃심 좋은 소리로야아! 세월을 이긴 자는 나와봐라!” 소리쳐보지만 불멸의 진리를 캐어낸 성현들도, 천하를 호령하던 대왕들도 이기지 못한 세월. 태산준령도 이를 거슬려 이겨내지는 못하고 그저 순응하며 견디고 있는 것을. 

평균 수명이 세기 전과 비교하면 거의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요즘은 노인학老人學, gerontology  관한 관심과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주목받고 있다. 노화에 대한 생물학적 병리학적 변화, 인지학적인 두뇌활동에 관한 연구, 심리학적인 현상의 접근, 사회학적인 측면의 변화와 이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책이 연구대상이다.

노년의 문제를 옛날처럼 효의 개념으로 개인문제로 삼기에는 노년의 기간이 너무 길다. 백세 시대의 인생을 사분하면 대략 25년은 자라고 교육 받고, 다음 25년은 일하고 자녀 양육의 시간으로 보낸다. 이후 나머지 오십 년을 노화의 문턱을 넘어서는 시기로 본다면 반생을 노년으로 살아내야 한다. 

따라서 인생 후반기에 들어선 인구의 활동을 유용한다면 사회 전반에 걸친 공헌도 무시할 없는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경험을 보더라도 인생 삼분기의 25년은 아직 싱싱하고, 활력이 있고, 의욕도 좋을 때다. 인생 1,2분기를 치열하게 살아온 경력의 소유자다. 사려 깊고, 숙련되고, 부담이 적은 양질의 노동력이 사회로 환원될 있다. 이는 개인에게도 사회적인 면으로도 바람직한 대안이 있다.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어도 노인학의 발전으로 변화하는 세태에 맞춤형 기조 시스템이 조속히 형성되어 튼튼하고 건강한 사회에서 행복한 인생을 보낼 있기를 기대해본다. 

 

     사랑은 강물처럼 흐르고

     그리움은 안개처럼 밀려오는데 

     반짝이는 윤슬에 미소를 얹는

     무연한 눈길의 여인 

     꿈결같은 세월의 서리가 무상하다

 

맘을 달리 먹기로 했다. 무작정 주저앉아 개탄하는 무모한 감정 소모를 그치고 작은 일에서부터 변화하는 현상에 순응하며 지혜롭게 대처하여 일상에서 삐그덕거리는 차질을 방지한다. 전화기 주머니로 성가신 숨바꼭질을 멈추듯 대처방안을 고심하며 머리를 짜낸다. 중요한 일은 수시로 기록하는 습관을 들인다.  무슨 물건이나 정해진 자리에만 놓는 버릇을 기른다. 핸드백 안의 물건들은 색깔 주머니로 구분을 한다. 요일 별로 아침 저녁이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는 약통에서 약을 꺼내 먹으면서도 요일과 시간을 소리 내어 확인하는 복창을 한다. “화요일 아침 감사!”

 

  기억의 한계치를 넘기지 않도록 주변의 물건들을 간단하게 줄이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물건들 아니라 활동의 영역도 제한하여 스스로 감당할 있는 범위 안에서 안정적이고 유쾌할 있는 적정선을 유지한다. 

반면 힘써 늘려야 것이 있다. 가만두면 저절로 점점 줄어가는 친구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돌잔치나 결혼 청첩장은 사라지고 부고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물심 양면으로 공들이고 힘써서 친구를 늘리도록 힘쓴다. 무심하면 그냥 지나칠 작은 일도 씼고 세세하게 찾아내어 감사하는 습관을 늘린다. 허파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 웃음소리를 크게 늘린다. 가장 소홀하기 쉬운 배우자나 가까운 사람에게 열광적인 지지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다. 자연을 가까이 함으로 치유 받는 기회를 자주 만든다. 기쁘고 즐거운 일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며 즐긴다. 

 

  눈을 감고 이생을 하직하는 날까지 손과 발로 수신제가修身济家 있기 위해 열심을 다해 몸을 단련시키고 건강관리를 철저히 한다. 간단없이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미리 계획을 세워 정성스레 일상을 쓰다듬고 다스리며 남은 생을 꾸려나가야겠다.

 

22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