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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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하필下筆/수필

2024.05.03 15:26

yujaster 조회 수:29

하필下筆 / 민유자

 

  걱정으로 못드는 . 노심초사 비가 속히 그치기만 바라지만,  쏴아! 줄기차게 퍼붓는 빗소리는 마룻바닥에 콩자루를 쏟아붓는 같다. 염려때문에 그런지 빗소리는 점점 커지는것 같고 귀가 먹먹하다.  다시 일어나 거실로 나가 패티오를 내다본다. 들락날락 머리를 짜내어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지만 속수무책이다.

 

  남서향 패티오 처마 코너에 화분을 몇개 모아 놓았더니 화초들이 자리가 맘에 들었던지 원기 좋게 자라서 풍성하니 보기에 좋다. 어제 아침에 패티오 문을 열고 나서니 화분 속 에서 한마리가 후닥닥 날아간다.  비들기보다는 조금 작고 참새보다는 훨씬 새다. 화초에 떡잎을 따주면서 보니 무성한 제라늄 화분에 대추알 하얀 새알이 다섯개가 보인다. “어마나! 알을 품고 있었구나!” 무심코 지은 저지레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얼른 돌아서 들어오다 보니 날아갔던 새가 돌아와서 담장 위에 앉아 내게 눈총을 쏘고 있다. 이제부터 패티오는 출입 금지다.

 

  처마를 따라 설치된 홈통에 낙엽이 쌓였던지 비가 억세게 쏟아지니까 기역자로 꺾어지는 곳에서 철철 넘쳐 흐르는 낙수 소리가 요란하다. 알을 품은 어미새가 염려되어 패티오 유리문 안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이를 어쩌나!  홈통의 낙수가 고무나무 잎에 떨어지면서 각도를 약간 틀어서 어미새를 무자비하게 덮치고 있다.  봄이라지만 아직은 추운데! 비를 저리 줄기차게 맞으면 어찌하나! 알을 품은 작은 몸체가 체온을 유지할 있을까? “어쩌면 좋으니! 알을 품었으니 비켜 앉을 수도 없구나!” 

홈통에 낙엽을 오기 전에 내가 미리 긁어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고! 하필! 고무나무 잎은 바로 자리에 있어가지고 낙수의 방향을 틀었는지!  네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리 물매를 맞아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비가 오기 전에는 아늑하고 안전한 천혜의 명당자리가 틀림 없었으니 잘못은 전혀 아니다! 누구의 잘못이랄 수도 없는 ! 까맣고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묵묵히 경계를 서는 모습에서 거룩한 모성의 서기가 어려있음을 본다.

 

  내가 팔만 내밀어도, 제라늄 분을 뼘만 옮겨 주어도, 고무나무 잎을 치만 틀어주어도 너는 찬물 폭포를 맞지 않을 있는데! 내가 아무리 숨을 죽여 유리문을 열어도 뜻을 모르는 너는 당장 품고 있던 알들을 버리고 비통한 맘으로 날아가버리겠지! 

나도 없구나 하필의 해답을! 내가 너를 보며 다시 확인하는 것은 그저 무릇 살아있는 것들의 비정한 존엄, 위대함, 거기까지다! 힘들어도 견디거라! 귀에 대고 일러주고 싶구나! 비는 그칠게다. 폭우가 오래가는 법은 없으니까! 

 

  설친 밀어놓고 하필下筆* 맘을 달래어본다.

 

230131

 

 

*하필下筆 - 붓을 대어 쓴다. 시문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