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잔치에서 흘린 조카의 눈물

2024.08.13 14:26

성민희 조회 수:30

돌잔치에서 흘린 조카의 눈물

 

성민희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11/25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11/24 12:20

 

 

조카가 훌쩍이며 울음을 삼킨다. 돌잔치 축하객 앞에서 연신 눈물을 닦는 이유를 나는 안다. 결혼한 지 7년이나 지난 오늘의 잔치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늦은 결혼을 한 조카는 아기를 갖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는 인공수정도 포기하지 않고 몇 년을 계속 했다. 경제적인 부담이나 육체적인 고통도 아기 엄마가 되고 싶은 소망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남의 아기를 데려다 키우면 기적이 생긴다는 속설에 마음을 기대며, 부모의 마약 복용과 이혼으로 갈 곳이 없는 백인 아기를 맡아 돌보기도 했다.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며 긴 세월을 인내하던 어느 날 폭죽이 터졌다. 예쁜 여자 아기가 탄생한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온 집안에 내리는 축포였다.
미소를 머금고 흘리는 눈물은 보는 사람의 마음도 적신다. 저 마음이 어떨까. 그녀의 가슴을 스쳐 지나는 수많은 장면이 내게도 다가온다. 조카사위는 힘줄 솟은 팔뚝에 아기를 얹고 돌아다니다가 다른 쪽 팔로 두 눈이 발개진 아내를 껴안는다. 말랑말랑한 아기를 사이에 끼운 채 세 사람이 한 덩이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연약한 아기가 주는 존재감이 저렇게 큰 줄 몰랐다.
교인이 30명 남짓한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을 뵌 적이 있다. 가족을 모두 한국에 두고 유학 생활을 하는, 말을 더듬는 분이셨다. 강단에서 설교를 할 때는 막힘이 없었지만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더듬거리는 말 때문에 사소한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다. 때문에 목사님은 늘 혼자였고 혼자이기에 더욱 초라해보였다. 어느 해 여름 초등학생 딸이 한국에서 왔다. 방학을 맞아 아버지를 뵈러 온 것이었다. 예배 후 여느 때처럼 점심 식사가 마련된 자리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딸과 나란히 앉은 목사님의 모습이 달라져보였다. 어떤 사람이 곁에 앉아도 스산한 바람만 빙빙 돌던 목사님 옆에 가족이라는 이름의 작은 소녀가 앉으니 저렇게 분위기가 바뀌는구나. 가족의 유무에 따라 한 사람의 존재감이 그리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몇 년 전 여성가족부의 설문 조사가 있었다.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말이 떠오르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그 결과 ‘눈물’, ‘희생’, ‘걱정’등의 부정적인 단어가 나오기도 했지만 ‘사랑’, ‘힘’, ‘존재’, ‘행복’이란 단어가 월등히 많았다. 가족은 ‘절대적인 운명공동체’가 아니라는 풍조가 자리매김하는 이 시대에도 가족이란 든든한 지원군, 포근한 안식처라는 인식이 아직은 남아있다는 거다.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기어이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완성한 조카가 참으로 귀하고 대견하다. 이제 사랑의 열매로 더욱 단단해졌으니 함께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리라. 서로 꼭 끌어안은 세 사람 곁으로 어느새 다가온 카메라맨이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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