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쌀 쌀
2009.09.23 19:55
쌀 ‧ 쌀 ‧ 쌀
김 학
쌀미자는 米(미)라고 쓴다. 그런데 이제는 그 한자도 바꿔야 할 처지다. 쌀 한 톨이 태어나려면 농부의 손길이 88번이나 가야 한다고 해서 만들어진 글자가 米자인데 지금은 기계로 농사를 짓는다. 농부의 손길이 88번 가지 않아도 쌀이 생산되니 마땅히 米자도 바꿔야 할 게 아닌가?
사실 요즘 쌀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쌀 ․ 쌀 ․ 쌀! 쌀의 인기가 날로 떨어지니 쌀 역시 살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쌀의 입장에서 보면 천상천하유아독존이던 옛날이 무척 그리울 것이다. 쌀을 주식으로 여기던 옛날에는 쌀이 가치의 척도로서 화폐의 역할까지 대신했었다. 집이나 논밭을 사고 팔 때도 쌀로 흥정을 했고, 머슴의 새경도 쌀로 주었으며, 하숙비도 쌀로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속담도 생겼고, 천석꾼 만석꾼이란 말도 있었던 것이다.
가난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고 할 정도로 옛날에는 가뭄과 흉년이 심했다. 굶어 죽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나무에 하얗게 핀 꽃을 흰쌀로 지은 ‘이밥’으로 생각하고 ‘이팝나무’라 했겠는가? 심지어 여자로 태어나서 시집 갈 때까지 쌀 한 말을 못 먹는다는 말도 있었는데 오늘의 젊은 여성들이 그 말의 뜻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쌀독이 바닥나도 우리 조상들은 궁색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쌀을 ‘사러’ 가면서도 거꾸로 쌀을 ‘팔러’간다고 허풍을 떨었던 것이다. 체면을 밥보다 더 중시했던 시절의 일화다.
요즘엔 쌀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인삼 쌀, 쌀눈 쌀, 클로렐라 쌀, 현미 쑥 쌀, 유산균발효 쌀, 향기 쌀, 우렁이 쌀, 오리 쌀 등 예전엔 듣도 보도 못했던 쌀 이름들이 많다. 그 쌀들은 저마다 주부들의 간택을 기다리며 온갖 교태를 다 부린다. 또 쌀의 색깔도 여러 가지다. 흰쌀을 비롯하여 검은 쌀, 붉은 쌀, 초록 쌀, 노란 쌀까지 나온다. 그래서 오색미(五色米)라고 도 한다던가? 농부들은 그렇게 안간힘을 다하여 좋은 쌀을 생산하지만 쌀에 대한 대접이 옛날 같지 않으니 이를 어이할 것인가?
요즘엔 어느 누구도 쌀이 곧 ‘살’이고 쌀이 곧 ‘목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쌀이야말로 살이 찌는 원흉이고 살이 찌면 성인병이 생겨 목숨을 단축시킨다고 여긴다. 그러기에 쌀을 귀중하게 생각하기는커녕 적(敵)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쌀이 이렇게 푸대접을 받자, 쌀을 생산하는 농부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그 쌀의 생산지인 논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옛날엔 논이 밭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밭이 논보다 더 비싸다. 게다가 지금은 논을 깔아뭉개 아파트나 공장을 짓는 게 예사다. 그뿐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널따란 도로를 내느라 논이 자꾸만 줄어든다. 그런데도 누구 한 사람 걱정조차 하지 않는다. 쌀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조상님들이 후손인 우리의 이런 작태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금세 크게 꾸짖는 조상님들의 천둥소리 같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올 것만 같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사람은 밥의 힘으로 산다고 믿었다. 밥은 그만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음식의 하나였던 까닭이다. 옛날 머슴밥은 밥 두 그릇을 합친 것 같은 고봉밥이었다. 배가 불러야 일을 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알의 쌀에는 우리 겨레의 혼과 뿌리가 담겨 있고, 문화와 전통이 배어 있다. 밥을 소중하게 여긴 우리 조상님들은 그만큼 식사예절도 잘 지켰다. ‘수라’ ‘진지’ ‘메’ 등 밥을 먹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을 붙였다. 어른이 먼저 진짓상을 받아 식사를 하고 나면 아랫사람들은 그 상을 물려받아서 식사를 했다. 벼슬아치나 양반네의 식사풍습이었다. 식사시간은 어른이 자손들에게 예절을 가르치는 교육장이었다. 이른바 밥상머리교육이다. 그런데 요즘엔 어른과 어린이가 같은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으니 밥상머리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든 뒤에 아랫사람이 수저를 들어야 하고, 또 국을 먹을 때는 후루룩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며, 밥을 입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또 입맛이 없다고 깨지락거리거나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사람은 굶어죽을 팔자라고 따끔하게 가르쳤고, 밥을 먹는 도중에 수저를 흔들거나 까불면 복이 나가 거지팔자를 면치 못한다고 나무랐다.
옛날 쌀밥은 양반이나 부자만 먹을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명절이나 제사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게 쌀밥이었다. 지금은 우리네 살림형편이 좋아지면서 누구나 마음대로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나 할까?
나는 지난여름 살을 빼려고 한 달 동안 금식을 한 적이 있다. 처음 나흘 동안엔 밥을 먹지 않고 채소반찬만 먹었고, 나머지 26일 동안엔 점심 때 잡곡밥 반 그릇만 먹으며 버텼다. 살과의 전쟁은 힘겨운 싸움이었다. 흉년에 쌀이 없어서 밥을 먹지 못했을 때는 가난이 미워서 눈물을 흘렸지만 이번 금식 때에는 푸짐한 쌀밥을 두고도 먹을 수가 없어서 가슴이 아팠다. 나의 금식 때는 왜 어린 시절에 보았던 머슴의 고봉밥이 그렇게 생각났을까? 배가 고플 때마다 물로 빈 배를 채우며 지내는 것은 고역이었다. 쌀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밥을 먹지 않고 견디려다 보니 내 주변에는 밥 외에도 나를 유혹하는 먹을거리들이 꽤나 많았다. 한 달 만에 몸무게를 5킬로그램 줄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요즘 살을 빼려고 헬스클럽에 나가 운동을 하고, 스포츠댄스나 요가를 배우는 이들도 많다. 그렇게 몸매를 가꾸는 사람들은 끼니때마다 밥의 양을 줄이는 게 예사다. 우리 조상님들은 밥이 먹고 싶어도 밥이 없어 못 먹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밥이 있어도 살이 찔까 봐 식사량을 줄인다. 농부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실정이니 이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거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 속담까지도 확 바꿔야 할 것 같다.
나도 집에서 흰 쌀밥을 먹어본 게 언제인지 모른다. 건강식이라 하여 콩과 현미, 잡곡 등을 섞어 지은 밥을 먹기 때문이다. 요새 구박을 받는 쌀이 찬란하던 옛날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누구에게 물어보면 명확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호통재라! 건강을 지켜주는 으뜸 보약이라던 쌀이 어쩌다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되었는지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김 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자가용은 본처 택시는 애첩》등 수필집 10권, 수필평론집《수필의 맛 수필의 멋》/ 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대한민국 향토문학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http;//blog.daum.net/crane43 HP:011-9641-3388
김 학
쌀미자는 米(미)라고 쓴다. 그런데 이제는 그 한자도 바꿔야 할 처지다. 쌀 한 톨이 태어나려면 농부의 손길이 88번이나 가야 한다고 해서 만들어진 글자가 米자인데 지금은 기계로 농사를 짓는다. 농부의 손길이 88번 가지 않아도 쌀이 생산되니 마땅히 米자도 바꿔야 할 게 아닌가?
사실 요즘 쌀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쌀 ․ 쌀 ․ 쌀! 쌀의 인기가 날로 떨어지니 쌀 역시 살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쌀의 입장에서 보면 천상천하유아독존이던 옛날이 무척 그리울 것이다. 쌀을 주식으로 여기던 옛날에는 쌀이 가치의 척도로서 화폐의 역할까지 대신했었다. 집이나 논밭을 사고 팔 때도 쌀로 흥정을 했고, 머슴의 새경도 쌀로 주었으며, 하숙비도 쌀로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속담도 생겼고, 천석꾼 만석꾼이란 말도 있었던 것이다.
가난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고 할 정도로 옛날에는 가뭄과 흉년이 심했다. 굶어 죽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나무에 하얗게 핀 꽃을 흰쌀로 지은 ‘이밥’으로 생각하고 ‘이팝나무’라 했겠는가? 심지어 여자로 태어나서 시집 갈 때까지 쌀 한 말을 못 먹는다는 말도 있었는데 오늘의 젊은 여성들이 그 말의 뜻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쌀독이 바닥나도 우리 조상들은 궁색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쌀을 ‘사러’ 가면서도 거꾸로 쌀을 ‘팔러’간다고 허풍을 떨었던 것이다. 체면을 밥보다 더 중시했던 시절의 일화다.
요즘엔 쌀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인삼 쌀, 쌀눈 쌀, 클로렐라 쌀, 현미 쑥 쌀, 유산균발효 쌀, 향기 쌀, 우렁이 쌀, 오리 쌀 등 예전엔 듣도 보도 못했던 쌀 이름들이 많다. 그 쌀들은 저마다 주부들의 간택을 기다리며 온갖 교태를 다 부린다. 또 쌀의 색깔도 여러 가지다. 흰쌀을 비롯하여 검은 쌀, 붉은 쌀, 초록 쌀, 노란 쌀까지 나온다. 그래서 오색미(五色米)라고 도 한다던가? 농부들은 그렇게 안간힘을 다하여 좋은 쌀을 생산하지만 쌀에 대한 대접이 옛날 같지 않으니 이를 어이할 것인가?
요즘엔 어느 누구도 쌀이 곧 ‘살’이고 쌀이 곧 ‘목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쌀이야말로 살이 찌는 원흉이고 살이 찌면 성인병이 생겨 목숨을 단축시킨다고 여긴다. 그러기에 쌀을 귀중하게 생각하기는커녕 적(敵)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쌀이 이렇게 푸대접을 받자, 쌀을 생산하는 농부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그 쌀의 생산지인 논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옛날엔 논이 밭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밭이 논보다 더 비싸다. 게다가 지금은 논을 깔아뭉개 아파트나 공장을 짓는 게 예사다. 그뿐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널따란 도로를 내느라 논이 자꾸만 줄어든다. 그런데도 누구 한 사람 걱정조차 하지 않는다. 쌀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조상님들이 후손인 우리의 이런 작태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금세 크게 꾸짖는 조상님들의 천둥소리 같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올 것만 같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사람은 밥의 힘으로 산다고 믿었다. 밥은 그만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음식의 하나였던 까닭이다. 옛날 머슴밥은 밥 두 그릇을 합친 것 같은 고봉밥이었다. 배가 불러야 일을 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알의 쌀에는 우리 겨레의 혼과 뿌리가 담겨 있고, 문화와 전통이 배어 있다. 밥을 소중하게 여긴 우리 조상님들은 그만큼 식사예절도 잘 지켰다. ‘수라’ ‘진지’ ‘메’ 등 밥을 먹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을 붙였다. 어른이 먼저 진짓상을 받아 식사를 하고 나면 아랫사람들은 그 상을 물려받아서 식사를 했다. 벼슬아치나 양반네의 식사풍습이었다. 식사시간은 어른이 자손들에게 예절을 가르치는 교육장이었다. 이른바 밥상머리교육이다. 그런데 요즘엔 어른과 어린이가 같은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으니 밥상머리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든 뒤에 아랫사람이 수저를 들어야 하고, 또 국을 먹을 때는 후루룩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며, 밥을 입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또 입맛이 없다고 깨지락거리거나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사람은 굶어죽을 팔자라고 따끔하게 가르쳤고, 밥을 먹는 도중에 수저를 흔들거나 까불면 복이 나가 거지팔자를 면치 못한다고 나무랐다.
옛날 쌀밥은 양반이나 부자만 먹을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명절이나 제사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게 쌀밥이었다. 지금은 우리네 살림형편이 좋아지면서 누구나 마음대로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나 할까?
나는 지난여름 살을 빼려고 한 달 동안 금식을 한 적이 있다. 처음 나흘 동안엔 밥을 먹지 않고 채소반찬만 먹었고, 나머지 26일 동안엔 점심 때 잡곡밥 반 그릇만 먹으며 버텼다. 살과의 전쟁은 힘겨운 싸움이었다. 흉년에 쌀이 없어서 밥을 먹지 못했을 때는 가난이 미워서 눈물을 흘렸지만 이번 금식 때에는 푸짐한 쌀밥을 두고도 먹을 수가 없어서 가슴이 아팠다. 나의 금식 때는 왜 어린 시절에 보았던 머슴의 고봉밥이 그렇게 생각났을까? 배가 고플 때마다 물로 빈 배를 채우며 지내는 것은 고역이었다. 쌀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밥을 먹지 않고 견디려다 보니 내 주변에는 밥 외에도 나를 유혹하는 먹을거리들이 꽤나 많았다. 한 달 만에 몸무게를 5킬로그램 줄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요즘 살을 빼려고 헬스클럽에 나가 운동을 하고, 스포츠댄스나 요가를 배우는 이들도 많다. 그렇게 몸매를 가꾸는 사람들은 끼니때마다 밥의 양을 줄이는 게 예사다. 우리 조상님들은 밥이 먹고 싶어도 밥이 없어 못 먹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밥이 있어도 살이 찔까 봐 식사량을 줄인다. 농부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실정이니 이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거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 속담까지도 확 바꿔야 할 것 같다.
나도 집에서 흰 쌀밥을 먹어본 게 언제인지 모른다. 건강식이라 하여 콩과 현미, 잡곡 등을 섞어 지은 밥을 먹기 때문이다. 요새 구박을 받는 쌀이 찬란하던 옛날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누구에게 물어보면 명확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호통재라! 건강을 지켜주는 으뜸 보약이라던 쌀이 어쩌다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되었는지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김 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자가용은 본처 택시는 애첩》등 수필집 10권, 수필평론집《수필의 맛 수필의 멋》/ 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대한민국 향토문학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http;//blog.daum.net/crane43 HP:011-9641-3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