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는가

2023.11.30 18:36

nlsan 조회 수:16

세월이 가는가.

정말로 세월이 가는 것일까? 자고 일어나면 창이 훤하게 밝아있다. 하루의 시작이다.

그렇게 7일이 1, 4주가 한달, 12달이 1년이다. 1년 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백 년 전이 그랬고 천 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늘 일정한 것은 변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보면 세월은 가는 게 아니라 언제나 그대로인 것 같다. 변하는 것은 나 자신일 뿐이다.

우리 인간은 그 세월에 잠간 기대 살다가 떠나는 존재가 아닐까. 그래도 우리가 건강하게 여기에 머물 수 있다면 지나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천천히 간다 해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975년 밴쿠버로 건너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인터뷰 할 때 이민관이 캐나다에서는 밴쿠버가 제일 살기 좋은 곳이니 거기에 가서 정착하라고일러주었던 것 그대로다. 남의 터에 건너와 뿌리내리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Machinist로서 여기 자격증도 따고 좋은 직장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97, 밴쿠버에서 처음으로 밴쿠버 한인 산우회란 산행단체를 만들었다. 그때 밴조선 김동기 사장의 권유에 힘입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Grouse Grind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덤볐으니 무식이 용감했다고 하겠다.

아내와 나는 80 중반에 이르렀으니 옛날로 치면 상노인이다. 그래도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지난 덕이라 해본다.

산이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도시 주변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길이 또 있을 가 싶을 만큼 많은 산속의 길이 있다. 뿐만 아니라 가슴이 열리는 세계 제일 로키 산길도 하루면 간다. 산에서 행복해 하는 산벗들과 정을 나누며 살았다.

산속에서 만나는 이런 즐거움은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잠간 멈추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은퇴를 했으니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그러면서 기다려지는 것은 토요일이었다.

정든 산벗들을 만나고 잠에서 깨어난 새 산을 다시 만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리하여 병을 얻었고 나이가 있으니 회복이 쉽지 않다. 오순도순 산길에서 재잘거리고 멕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이 추억이 되었다.

집 근처에서 아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걷는 시간이 좋은 때다. 힘들면 쉰다. 그러면서 아내를 건너다본다. 아들 딸 데리고 낯선 땅에 건너와 말 배우고 힘들게 일하면서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 고생한 흔적이 주름살에 숨어있고 흰머리에 잠겨있다.

세월은 뒤에서 따라오지 않는다. 우리가 계속해서 산길을 걸으며 건강을 유지한다면 앞서가던 세월이 뒤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9713c5df1b04e90810612703c26d6896[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