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흐르는 세월이 어디 있으랴



    홍인숙(그레이스)




    붙박이 장이 되어
    혼자의 공간에만 집착하던 내가
    남편의 팔짱을 끼고 쇼핑을 나섰다

    삼대가 생일이 같으면 길(吉)하다는데
    올해 환갑인 오빠가 팔순 중반의 아버지를 모시고
    갓 태평양을 건너온 며느리와 함께 맞이하는 생일날은
    수십 년씩 벌어진 세월의 폭이
    가족이라는 한 가닥 고운실로 따습게 엮어 지는 날

    선물 꾸러미를 안고 바라본 하늘엔
    우울하던 구름을 헤치고 햇줄기가 반짝인다

    “올해도 금방 갈 것 같아”
    “맞아. 부활절 지나고, 칠월 독립기념일 지나면
    그 담부턴 금방금방 ...또 한 해가 다 간 거지”

    이제 막 새해를 맞아 닷새밖에 안 되는 날
    오랜만에 맑은 하늘 아래서도
    우린 벌써 올해의 끝을 서성거렸다

    또다시 안게 될 섬광 같은 세월일지라도
    이유 없이 흐르는 세월이 어디 있으랴
    꽃과 바람과 열매와 더불어 흐르는 세월이 있어
    사랑을 이어가는 가족이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