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2-2011 '이 아침에'

새들은 다 어디로 갔나
                                              조옥동/시인

해가 지고 아침 동이 틀 때까지 창밖의 숲은 새들의 코러스 경연장 이었다. 늦은 봄부터 얼마 전까지 수많은 새들 소리에 밤잠을 설치곤 했다. 고양이가 지나가도 실바람에 나무의 어린 가지만 흔들려도 저절로 켜지는 외등은 새소리에도 민감하여 밤새워 새들의 경연장을 비춰주었다. 짹짹 짹짹짹 짹짹 짹째짹, 이는 ‘울음소리일까, 아니면 ‘노래 소리일까’ 꼭 묻고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창밖의 고요와 적막감에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다. 새들은 다 어디로 날아갔는가?

블랙 먼데이에 폭락, 추락, 패닉, 쇠락, 급락, 실직, 골프 황제의 극적인 몰락과 시무룩 등 새소리의 받침‘ㄱ’이 모두 월가의 증권거래장에 일부는 WGC 골프 대회장에 날아가 버린 것일까? 영국에서 시위대는 여왕을 불러내라며 폭력데모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제 새 소리에 박혔던 ‘ㄱ’의 힘이 빠져 째째하니 쩨쩨하게 들릴 것만 같다.

달러 제국의 쇠락이나 골프 황제의 몰락은 로마제국, 대영제국 등 패망의 역사를 떠올린다. 인간의 역사에 영원한 제국도 황금률은 없었다. 믿고 싶은 지구까지 진노를 폭발하고 곳곳이 굶주리고 매 마르고 무너지고 물에 쓸려 불안하고 우울한 현실이다. 누굴 원망할 것인가,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 묻고 싶어도 정답을 말해 줄 사람이 없다.

위로와 질서, 평화, 사랑, 나눔, 희망 등 무지개빛 언어는 누구의 혀 밑에 숨겨져 있는지 알고 싶다. 패션과 명품 자본과 황금, 보수와 진보 전쟁과 승리 오일과 달러 등 요란하게 무지무지한 힘을 가진 미혹의 언어에 밀려 난 상실자들, 남의 담벼락을 병풍삼아 새우잠을 자는 홈리스, 그들의 꿈속이나 공장의 소음 속 또는 최전방 보초병의 졸음 속에서 저 온유한 언어들은 틀림없이 화살처럼 날아가고 싶을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존재 그자체가 언어다. 언어는 두렵고 무서운 칼이 아니고 보이지 않고 돌아오지도 않는 화살이다. 때로는 독이 되어 사람을 상하게 한다. 인간은 자신이 소유한 언어의 용량만큼 산다. 존재의 확장은 언어의 용량을 키우는 일, 독서를 통해 삶의 명암을 볼 줄 알게 된다.
물량의 가치나 물질의 안락이나 스피드가 문명이나 우월의 표지는 될 수 없듯 문학은 자유로운 것 고독한 것 공허함을 식량으로 삼아 절제와 희생을 통해 격과 질이 높은 언어의 힘으로 생명의 본질을 나타낸다.”

지난주 24회 해변문학축제에 초대된 문정희 시인의 언어를 잘 쓰고 가야한다는 강의 요점이다. 일반인도 경청할 내용이라 옮겨 보았다. 거품의 언어, 속도만 있고 밀도가 없는 언어에 매혹된 현실이 미래를 염려하게 만든다며 문학의 도끼(언어)로 삶을 깨우라 했다.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주어졌다. 말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듣지 않고 자기 것으로 받지 않으면 그 말은 지나는 바람소리보다 못하다. 복음이나 경전이 아무리 좋아도 진정 자신에게 주는 말씀으로 느끼지 못하면 무용하다.
나는 믿는다. 새들은 돌아와 회복, 화목, 능력, 책임, 시작, 가족, 국가, 축복, 거룩, 상식, 정직과 도덕에도 짹짹 그‘ㄱ’의 힘을 받쳐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