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며

2015.01.09 17:23

차신재 조회 수:51

설거지를 하며
                      차신재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부엌 가득 쌓인 일거리가 싫지 않다
그릇에 묻은 냄새나는 찌꺼기들
스토브에 달라붙은 끈적거리는 것들
수세미로 박박 닦다보면
찌들고 얼룩진 내 삶의 자국들까지
씻겨나가는 듯 기분이 맑아진다

누가 다시 더럽힌들 무엇이 겁나랴
가슴 속에 쌓이는 앙금 없어
깨끗한 물로 한 바탕 헹구어내면
슬픔도 미움도 원망도 질투도
모두 씻겨 나가
다시 해 맑은 얼굴로 웃을 수 있는 걸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고
늘 기쁜 얼굴로 제 몫을 다 하는 것들
누군가의 영혼 그 밑바닥까지 탐내었던
내 외곬의 사랑은
스스로 산산 조각 나
목숨 한 끝엔 늘 눈물이 맺혀 있는데

더러워진 그릇들 깨끗이 씻어
찬장 속에 나란히 놓 듯
내 속의 온갖 찌꺼기들
말끔히 씻어 말려
맑은 별빛 하나로
가슴 속에 올려 놓을 수 있었으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19 유봉희 2006.06.21 12
2218 물 방울의 노래 유봉희 2006.06.21 15
2217 나이테의 소리가 들리나요 유봉희 2006.06.21 20
2216 그 속에도 꿈이 유봉희 2006.06.21 13
2215 천상의 노래 유봉희 2006.06.21 19
2214 몇 만년 전의 답신 유봉희 2006.06.21 19
2213 고양이에게 젖먹이는 여자 이월란 2009.09.04 4
2212 초록 만발 유봉희 2006.06.21 22
2211 작은 소리로 유봉희 2006.06.21 13
2210 죽음의 계곡에서 달떠오르다 유봉희 2006.06.21 12
2209 애쉬비 스트리트 유봉희 2006.06.21 13
2208 겨울 잠 유봉희 2006.06.21 17
2207 콜럼비아 빙하에서 유봉희 2006.06.21 21
» 설거지를 하며 차신재 2015.01.09 51
2205 다시, 밤바다 유봉희 2006.06.21 38
2204 돌 속에 내리는 눈 | 石の中に降る雪 유봉희 2006.06.21 111
2203 <한국일보 신년시> 다시 건너는 다리 위에서 석정희 2015.01.02 86
2202 관계 유봉희 2006.06.21 23
2201 재회 유봉희 2006.06.21 48
2200 몸 속 비밀을 읽다 정국희 2015.01.02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