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7 20:29

낙관(落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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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관(落款) / 성백군


   늙은 재두루미 한 마리가
   물가를 걷고 있다
   가다가 멈춰 서서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고는
   날개를 들먹거려 보이기도 하지만
   물속에 든 제 모습을 바라보고, 날지 못하고
   흐르는 물에 발자국만 꾹꾹 찍는다

   제 마음에는
   제가 살아온 날 수 만큼 제 몸이 무거워
   흔적은 남길 수 있다고 믿었겠지만
   몸이 무겁다고 물이 찍히나
   찍힌다 하더라도 흐르면 그만인 것을

   나도 한때는
   허방에 어른거리는 내 그림자를 믿고
   내 멋에 취하여 허공을 걸어봤지만
   걷는다고 다 길이 되지 않더라
   길이라 하더라도 발자국은 남길 수 없는 것을

   재두루미야
   우리 서로 해 넘어가는 자리에서 만났으니
   너는 내 안에 나는 네 안에 낙관(落款) 하나씩 찍어놓자
   그리고 빈 하늘에
   저녁노을 찰랑거리는 그림 그려 꽉 채우고
   지평이든 수평이든 암말 말고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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