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아동분과 줌토방 / 노경수 교수
2025.05.02 09:31

강사 : 노경수 교수

1960년 충남 공주 출생, 단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아동문학전공, 문학박사)
1997년 'MBC 창작동화 대상 수상'으로 문단에 나옴
한경대학교, 한서대학교 겸임교수, 단국대학교 대학원과 서울여자대학교 외래교수
흙빛 문학 회장, 단국 문인회장


<시점의 미학> 아동문학가 노 경 수
우리는 흔히 아동문학을 이야기할 때 동심의 문학 혹은 아동을 위한 문학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童心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한마디로 대답하기를 주저한다. 그것은 童心의 특성이 한 마디로는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상가 이탁오는 동심이란 거짓 없고 순수하고 참된 것으로 최초 一念의 本心이라고 하며 童心을 잃으면 참된 마음을 잃는 것이며, 참된 마음을 잃으면 참된 사람을 잃는 것이라고 하여 동심을 ‘참된 마음(眞心)’으로 정의하였다. 이러한 이탁오의 동심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이면 ‘참된 마음’이란 어떤 마음을 의미하는가, 또 질문거리가 생긴다. 따라서 아동문학의 축을 이루는 동심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정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만큼이나 한마디로 요약하기 어렵다.
어느 시대든 세계와 인생을 인식하는데 크게 두 가지 유형을 볼 수 있다. 첫째로 인생을 인간의 일상적인 실존을 구성하는 사실성(actuality)의 세계로서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모방은 마치 사진기와 같이 가능한 한 세밀화된 모방이 된다. 이때 진실은 ‘있는 그대로’ 곧 일상적 진실로서 사실을 담보로 한다. 그런데 이 일상적 진실에는 보편성과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사실성의 토대 위에서 진실의 세계(reality)를 인식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있는 세계보다 있어야 할 세계를 인식하는 것으로 인생을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측면에서 파악하는 폭넓은 인식 태도다. 이 경우는 진실을 담보로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세계를 지향한다.
이렇듯 “있는 세계”와 “있어야 할 세계”는 다르다. 특히 어린이들이 인식하는 현실은 어른들이 인식하는 현실과 거리가 있는데,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선택은 삶을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게 한다.
동화는 현실을 어떻게 담는가
아동문학은 아동 발달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발달 단계에 따라 이성을 갖춰가는 시기에 있는 아동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은 발달 단계만큼이나 다양하다. 아동들은 감각적이어서 눈에 보이는 세계만 믿는다. 이러한 아동들에게 '지구는 둥글다'고 하면 아동들은 나름대로 상상력을 가지고 둥글다는 것에 대하여 원반 모형으로 받아들이거나, 하늘에 또 하나의 지구가 떠 있다고 생각한다.
루소는 『에밀』에서 아이가 이성을 갖추기 이전에 ‘도덕적 존재’에 대한 관념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또한 ‘선과 악’을 아는 것이나, 인간은 왜 여러 의무를 지켜야 하는지 등의 문제는 아이들이 이해할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른의 도덕률을 강요하지 말 것을 주장한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도덕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도 나름대로의 논리적이고 합목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다만 어른들이 보는 견지에서 그것이 기성의 가치체계와 맞지 않을 뿐이다.
루소가 『에밀』에서 아이들에게 이성적인 태도를 요구하지 말고, 도덕적인 관념을 주입시키지 말라고 했을 때의 ‘이성’과 ‘도덕’이란 ‘기성의 편향적이고 불완전한 도덕으로 탐욕이나 불안 허영심 따위가 결부된 것을 가리킨다.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한 자연이란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도덕성이 발현되는 공간이다. 이때의 도덕은 종적으로도 횡적으로도 시대나, 문화권에 영향을 받지 않는 보편성을 가지는 윤리개념이다.
이에 비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도덕이란 세속적인 이해관계와 힘의 역학 관계로 점철된 도덕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아동문학을 창작하는데 어른의 가치 기준이나 이성의 잣대로 아이에게 접근하는 것은 많은 위험이 따른다.
아동문학을 향유하는 주체가 아동이고 보면 발달단계에 따른 인식의 변화를 고려하여 창작해야 하는데, 아이의 세계란 자연의 상태와 이어지고 자연이란 하늘의 순리, 즉 천심에 닿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대에 따라 만들어진 어른들의 가치관이나 도덕률로 동심을 재단할 수는 없다.
아동들은 이성의 발달, 도덕성의 발달, 사회성의 발달에 따라 현실을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동화창작에서 현실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주인공들의 발달 단계, 인식체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전제로 출발해야 할 것이다.
2. 작품 속에 나타나는 어린이들의 현실인식 방법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기를 원한다. 아니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행복해지기 위하여 안간힘을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행복하니까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에는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쉬운 길이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지개를 찾아 떠나는 소년처럼,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소년처럼 행복을 찾아 멀고 지루한 길 떠남을 시도한다.
아이들이 있는 집안에는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안도 비슷하다. 이유는 그들이 가진 순진성 때문인데, 순진성은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상력으로 재구성하여 받아드린다. 아이들이 재구성하여 받아들인 현실은 사실성의 세계를 지배하는 힘의 원리에 적용받지 않으며 외계의 사물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창조한다.
이때의 창조는 단순한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힘은 어른들에게 이미 잃어버린, 내면에 잠복한 동심을 깨어나게 해줌으로써 순진성의 세계를 회복시켜주고 웃음과 행복으로 인도하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수용하도록 이끈다.
필자의 모친에게는 반려견 멍군이가 있었다. 엄마는 옛날 사람이고, 시골집이다 보니 시츄인 멍군이는 집 안에서 사는 게 아니라 현관 앞에 놓인 개집에서 산다. 현관문만 열면 집안이고, 문턱이 없지만 멍군이는 경계를 분명히 알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멍군이는 필자가 가면 금기의 선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어머니가 필자를 위해 차려놓은 식탁 아래에 앉아 밥을 먹는 필자를 빤히 쳐다본다. 여기서 필자가 취할 행동은 다양하다. 멍군이를 밖으로 내쫓을 수도 있고, 쳐다보지 말라고 핀잔하거나 심하면 발로 찰 수도 있다. 물론 쳐다보는 눈빛을 외면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필자는 엄마가 발라놓은 생선을 멍군와 나눈다. 나를 향한 멍군이의 간절한 눈빛이 나로 하여금 그에게 나눠주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8장 3절에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믿음, 저 사람은 나를 외면하지 않아. 꼭 나눠줄 거야, 라는 단순하고도 확실한 멍군이의 믿음은 필자에게 그 믿음대로 행동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믿고 따른다면, 그리고 나는 그의 요구를 들어줄 능력이 있다면, 만사는 오케이다. 단순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이러한 믿음, 믿음으로 바라보는 인식 방법은 어른들의 삶을 변화시키면서 자기들의 욕망을 충족한다. 이러한 믿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의 원리로 작용하는 작품을 살펴본다.
2.1. 야마나카 히사시의 『내가 나인 것』
창작동화 『내가 나인 것』은 인식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엄마가 바라보는 주인공은 악동이고 말썽꾸러기이다. 그러나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주인공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도덕성과 이성도 가지고 있다. 다만 주인공(6학년 남아)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과 이성은 엄마가 가지고 있는 도덕성이나 이성과 다를 뿐이다. 그런데 엄마는 아들이 자신의 요구에 복종해야 한다는, 스스로 구조화된 욕망의 틀에 갇혀 있다. 반면 6학년인 아들은 나는 왜 주체로서 행동하면 안 되고,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야만 하는가, 이해하지 못하여 엄마에게 반항한다.
주인공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형과 다르다. 그래서 개인의 주체적인 사고와 외부세계가 충돌할 때 번민도 하고 반항도 하고 가출도 시도한다. 성장하면서 배운 정의나 사랑에 위배되는 것과 능동적으로 맞서—상대가 엄마일지라도—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에게 주어진 나름대로의 자기 표현법, 자기 사랑법이다.
주인공은 나름대로 갖춘 도덕성과 이성을 토대로 사물을 판단하고 나아가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안다. 또한 타인에 대한 배려도 할 줄 알아 주변의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내가 나인 것』에서 엄마와 맞서던 주인공은 결국에는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던 형이 나쁜 길로 빠져 힘들어할 때 돌아서게 만들고, 소유욕으로 가득했던 엄마로 하여금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한 인간으로 변화되게 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엄마의 강요에 순종하던 형도, 반항하던 주인공도 나름대로 도덕과 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체적이지 못하고 부모의 요구에 무조건 순종하던 형은 속으로는 반항심을 키우면서 부모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정적인 행동을 하였다. 반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자기의 주장을 펼쳐나갔던 주인공은 부모가 보이든 보이지 않든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계와 부딪히면서 일관된 행동을 한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연상된다.
결국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는 결과에 대한 책임도 부모에게 있다고 믿는 반면 주체적으로 행동한 아이는 그것에 따른 결과도 스스로 책임질 줄 안다. 이 작품은 아동과 어른의 인식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의 대립적 구조와 화해를 보여주는데 화해의 길은 아동이 가진 순수한 인식방법, 이기적이거나 계산되지 않은 동심에 기초한 방법이었다.
2.2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과 엘레너 H. 포터의 『소녀 폴리아나』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에 나오는 앤도 상상력에 의해 현실을 새롭게 구성해나간다. 스펜서 부인을 따라 입양되기 위해 기차와 배를 타고 섬에 온 초라한 앤은 오는 동안 내내 아름다운 상상을 한다. 엷은 하늘 빛 실크 드레스를 입고, 꽃이나 하늘거리는 깃털 장식이 달린 큰 모자를 쓰고 금시계를 차고 가죽으로 만든 장갑과 구두를 신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앤은 행복해진다. 그런데 남자 아이를 원하는 집에 실수로 들어가게 된 앤은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갈 처지에 놓인다. 주어진 현실이 더 이상 불행해질 수 없는 극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앤은 또다시 상상력을 토대로 불행한 현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로수 길을 ‘환희의 새 하얀 길’이라 부른다거나 집 근처에 있는 연못을 ‘빛나는 호수’라 부르기도 하고, 벚나무에 ‘눈의 여왕’이라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앤이 가진 이러한 상상력은 앤을 고아원으로 돌려보내려 했던, 무뚝뚝하고 엄격한 마슈와 마리라 남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그들의 내면에 잠복해 있는 동심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 집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결국 앤이 창조한 현실에 대한 인식은 불행한 사실성의 세계를 행복한 세계로 바꿔놓았다. 그것은 11살 어린 꼬마가 가진 순진성과 천진성에 기초한 동심, 행복해지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에 의한 상상력의 힘이다.
에레나 호그먼 포터의 『소녀 폴리아나』의 주인공 폴리아나도 하루에 한 가지씩 행복찾기를 시도한다.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된 폴리아나는 이모 폴리 해링턴의 집으로 옮겨가 다락방에 살게 된다. 폴리이모는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조카인 폴리아나조차 싫어한다. 폴리아나에게 주어진 현실은 빨간머리 앤에게 주어진 현실 못지않게 불행하다. 이모가 차갑게 대할 때마다 폴리아나는 다락방에 누워 어릴 때 목사였던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는 “성경 안에 기쁨을 표시하는 단어가 800번이나 나온다고, 주변에서 기쁨을 찾으라”고 딸에게 가르쳤고, 기쁨찾기는 어린 폴리아나의 놀이가 된다. 부모를 잃은 불행한 현실이지만 폴리아나는 다락방에서 아빠에게 배운 ‘기쁨찾기 놀이’를 하면서 현실을 극복한다. 폴리아나의 ‘행복찾기 놀이’의 시도는 폴리아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웃을 줄 모르고 무뚝뚝한 이모마저 변화시켜 사랑받는 여자로 바꾸어 놓는다. 『소녀 폴리아나』는 후에 ‘폴리아나의 시도’ 또는 ‘폴리아나적인’이라는 심리학 용어로도 차용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불행한 현실을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하여 행복한 현실로 바꿔놓는 방법이다.
2.3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전쟁에 피투 된 죠수아는 사실성의 세계에 대한 주체적인 사고를 하지 못할 만큼 어리다. 처참했던 2차 대전에서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에 따라 주인공인 아버지 귀도는 수용소로 끌려가고, 아들 조슈아를 데리고 가 수용소에 숨기고 같이 생활한다. 억압받고 두렵고 공포스러운 현실을 어린 아들 조슈아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귀도는 1,000점을 얻으면 탱크를 상으로 주겠다는 거짓말로 조슈아를 수용소 안에서 보호한다. 살벌한 현실 속에서도 귀도는 어린 아들을 위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수용소 생활을 한다. 아버지의 보호 속에서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어린 조슈아에게 처참했던 전쟁은 단지 놀이였을 뿐이다.
조슈아에게 펼쳐진 세상은 아버지를 통해 여과된 세상이다. 아버지의 보호 아래 전쟁의 참상을 모르는 채 천진난만하게 1,000점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죠수아는 아버지와의 게임에서 규칙을 지킴으로써 유태인 말살정책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후세에 증언할 수 있었다.
이 작품 속 조슈아가 『내가 나인 것』의 주인공처럼 혹은 앤이나 폴리아나처럼 좀 더 자란, 주체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아이였다면 포로수용소의 현실을 놀이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3. 시점의 진실
시대나 문화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아동들은 일정한 발달 단계에 따라 변화한다. 그 변화는 아이의 성장과 성숙과 경험에 영향을 받는다. 듣는 문학에서 읽는 문학으로 변화되는 시기, 어린이들의 현실은 부모를 통해서 여과되고 걸러진다. 아이들의 세계는 가정과 학교가 전부인 셈인데 선생님이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각박하고 냉엄한 현실을 날것으로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뾰족하고 모난 것을 다듬어서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것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준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깜깜한 밤, 산길에서 커다란 바위와 나뭇가지의 흔들림을 만났을 때 인식주체로서의 제제나 조슈아 같은 아이들에게 어둠에 덮인 바위와 나무는 바위와 나무가 아니다. 커다란 곰일 수 있고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웅크리고 기다리는 호랑이일 수 있으며 무시무시한 귀신일 수도 있다. 어른에게는 허무맹랑한 ‘거짓’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인식주체로서의 아이들에게는 ‘진실’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성의 세계는 부모를 여과하는 아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여과하면 동심의 세계, 환상의 세계로 이어진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고 곰이 숨어 있어도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될 수 있는 것이 조슈아와 같은 아이들의 인식체계이다. 이러한 인식 체계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동화에서 허무맹랑한 환상세계를 어린이 독자들이 흥미진진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물활론적 사고를 하는 아이들의 인식체계 때문이다. 좀 더 성장하여 이성이 갖춰지기 시작하면 그만큼 발달한 아이는 『내가 나인 것』의 주인공이나 폴리아나처럼, 혹은 앤처럼 주체적으로 사고하며 발달 단계에 따른 이성과 도덕성을 기초로 현실을 새롭게 창조해 나갈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진실하다’는 것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거짓’이나 ‘허무맹랑’일 수 있으며, 어른들의 세계에서 ‘진실하다’는 것은 아이들의 세계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황당무계한’ 것일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때문에 ‘진실하다’는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주체로서의 아동의 발달, 아동들이 가진 순진성과 천진성이라는 특수한 점을 염두에 두고 바라봐야 한다.
아동문학의 미학은 주인공에게 주어진 사실성의 세계와 인식주체(어린아이와 동식물 등)로서 주인공의 현실 인식이 충돌하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파생된다. 그 시점의 충돌을 얼마나 밀도 있게 그려낼 수 있는가는 아동문학의 미학에 접근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끝.) 2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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