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리기/서호련
2011.03.25 08:04
무릎 꿇리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서 호 련
닐다운 (Kneel down)!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한 자세다. 그러나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는 종교적으로 기도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무릎을 꿇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세배 때 또는 부모에게나 어른들에게 인사를 할 때 무릎을 꿇는다. 이것은 우리들의 오랜 관습이다. 상가(喪家)에서도 대부분 영전 앞에서나 상주들과 인사할 때 무릎을 꿇는다. 그것은 고인을 경모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우리들의 전통관습이다. 그러나 요새는 상가에서도 묵념이나 기도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서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는 서양 사람들은 이 모습을 매우 흥미롭고 또 경건하게 생각한다.
나도 교회를 다니지만 공개된 식당 홀 같은 곳에서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남에게 알리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보통 잠자리에서 깨어나 그 자리에서 또는 침대에 두 팔을 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일반교회에서도 앉아서 기도하지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는 않는다. 무릎을 꿇는 것은 아주 사적이고 은밀한 개인사의 경우다. 하물며 대통령 내외분이 참석한 공개적인 종교집회에서 그것도 계획에 없는 즉흥적 제의에 의하여 대통령 내외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하여 기도하게 한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다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데 대통령만 어정쩡하게 앉아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대통령의 무릎을 꿇렸을까? 오만하고 의식 수준이 낮은 일부 기독교지도자들의 수준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몹시 언짢다. 무릎을 꿇는 것과 무릎을 꿇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세상에는 품위 있고 우러러 보이는 무릎 꿇음도 많기는 하다.
34년 전의 일이다. 아내는 막내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때 캐나다에서 교구사도님이 한국을 방문하셨다. 김포공항에 마중을 나갔을 때 그분은 대뜸 물으셨다.
"아기를 낳았는가?"
"아닙니다. 아직도 몇 주 더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한국에 체류하는 사흘 안에 아기를 낳으면 내가 그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겠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로비에 있는 공중전화로 광주 집으로 전화를 했다. 혼자 집에 있는 아내에게 빈 말이라도 그 말씀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아내는 급박한 출산 준비를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의 전화를 누군가가 받았다.
"집사람 좀 바꿔줘요."
"아기 낳으려고 병원에 갔는데요."
그분께서는 스케줄대로 다음날 오후 광주를 방문하셨고 그날 밤 아내는 아기를 낳았다. 그 애가 지금 독일에 있는 막내 엘리사이다. 다음날 이른 아침 아기와 함께 엄마는 퇴원하여 집으로 왔고 사도님이 집으로 오셨다. 아기는 모포에 덮인 채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있었다. 그분은 무릎을 꿇으시고 어린 아기 이마에 세례를 베풀어 주셨다.
"이 애는 세례를 받기 위해 서둘러 나온 것 같다. 내 생애에 무릎을 꿇고 누구에게 세례를 베푼 적이 없고, 48시간 안에 출생한 아기에게 세례를 베푼 적도 없다."
물론 낮은 곳에 누워있는 아기의 세례를 위해서는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아니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분의 무릎 꿇은 모습은 오랫동안 내의 가슴에 남아 있다.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서독수상이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최대 피해를 당한 국가 중 하나인 폴란드를 방문하여 유태인 추모비 앞에 섰다. 그는 꽃을 바치며 무릎을 꿇었다. 대국의 수상이 무릎까지 꿇을 거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전 세계가 놀랐다. 독일 내에서도 너무했다는 소리가 나왔다. 나치 정권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회개였다. 나치의 잔혹함으로 전 세계가 독일이라면 머리를 절절 흔들던 때, 그가 무릎을 꿇어서 독일에 대한 불신과 의혹을 씻어냈다.
“저렇게 진정으로 반성하는구나!”
그 뒤에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조선시대 우리의 임금들도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는 극심한 한발 때 천신단에서 기우제를 지내면서 흰옷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하늘에게 탄원했다. 일본의 대지진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원자로가 폭발하여 수 십 만 명이 피난길에 오른 상황을 보고 어느 네티즌이 글을 썼다.
"대통령님. 이게 바로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할 때가 아닌가요?"
무릎을 꿇는 것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한 자세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려서 무릎을 꿇어야 하는 법이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서 호 련
닐다운 (Kneel down)!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한 자세다. 그러나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는 종교적으로 기도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무릎을 꿇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세배 때 또는 부모에게나 어른들에게 인사를 할 때 무릎을 꿇는다. 이것은 우리들의 오랜 관습이다. 상가(喪家)에서도 대부분 영전 앞에서나 상주들과 인사할 때 무릎을 꿇는다. 그것은 고인을 경모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우리들의 전통관습이다. 그러나 요새는 상가에서도 묵념이나 기도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서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는 서양 사람들은 이 모습을 매우 흥미롭고 또 경건하게 생각한다.
나도 교회를 다니지만 공개된 식당 홀 같은 곳에서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남에게 알리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보통 잠자리에서 깨어나 그 자리에서 또는 침대에 두 팔을 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일반교회에서도 앉아서 기도하지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는 않는다. 무릎을 꿇는 것은 아주 사적이고 은밀한 개인사의 경우다. 하물며 대통령 내외분이 참석한 공개적인 종교집회에서 그것도 계획에 없는 즉흥적 제의에 의하여 대통령 내외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하여 기도하게 한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다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데 대통령만 어정쩡하게 앉아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대통령의 무릎을 꿇렸을까? 오만하고 의식 수준이 낮은 일부 기독교지도자들의 수준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몹시 언짢다. 무릎을 꿇는 것과 무릎을 꿇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세상에는 품위 있고 우러러 보이는 무릎 꿇음도 많기는 하다.
34년 전의 일이다. 아내는 막내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때 캐나다에서 교구사도님이 한국을 방문하셨다. 김포공항에 마중을 나갔을 때 그분은 대뜸 물으셨다.
"아기를 낳았는가?"
"아닙니다. 아직도 몇 주 더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한국에 체류하는 사흘 안에 아기를 낳으면 내가 그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겠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로비에 있는 공중전화로 광주 집으로 전화를 했다. 혼자 집에 있는 아내에게 빈 말이라도 그 말씀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아내는 급박한 출산 준비를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의 전화를 누군가가 받았다.
"집사람 좀 바꿔줘요."
"아기 낳으려고 병원에 갔는데요."
그분께서는 스케줄대로 다음날 오후 광주를 방문하셨고 그날 밤 아내는 아기를 낳았다. 그 애가 지금 독일에 있는 막내 엘리사이다. 다음날 이른 아침 아기와 함께 엄마는 퇴원하여 집으로 왔고 사도님이 집으로 오셨다. 아기는 모포에 덮인 채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있었다. 그분은 무릎을 꿇으시고 어린 아기 이마에 세례를 베풀어 주셨다.
"이 애는 세례를 받기 위해 서둘러 나온 것 같다. 내 생애에 무릎을 꿇고 누구에게 세례를 베푼 적이 없고, 48시간 안에 출생한 아기에게 세례를 베푼 적도 없다."
물론 낮은 곳에 누워있는 아기의 세례를 위해서는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아니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분의 무릎 꿇은 모습은 오랫동안 내의 가슴에 남아 있다.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서독수상이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최대 피해를 당한 국가 중 하나인 폴란드를 방문하여 유태인 추모비 앞에 섰다. 그는 꽃을 바치며 무릎을 꿇었다. 대국의 수상이 무릎까지 꿇을 거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전 세계가 놀랐다. 독일 내에서도 너무했다는 소리가 나왔다. 나치 정권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회개였다. 나치의 잔혹함으로 전 세계가 독일이라면 머리를 절절 흔들던 때, 그가 무릎을 꿇어서 독일에 대한 불신과 의혹을 씻어냈다.
“저렇게 진정으로 반성하는구나!”
그 뒤에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조선시대 우리의 임금들도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는 극심한 한발 때 천신단에서 기우제를 지내면서 흰옷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하늘에게 탄원했다. 일본의 대지진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원자로가 폭발하여 수 십 만 명이 피난길에 오른 상황을 보고 어느 네티즌이 글을 썼다.
"대통령님. 이게 바로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할 때가 아닌가요?"
무릎을 꿇는 것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한 자세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려서 무릎을 꿇어야 하는 법이다.